어떤 삶의 이야기라고 할까?

아내 따라 (4월 초팔일) 등(燈)공양...

단해 2017. 7. 1. 00:00

지난 5월 03일(음력 4월초팔일) 3일 전에 아내의 성화에 못이겨 가까운 @ 절(寺)에 따라가봤지!

금년 (2017) 4월 초팔일은 불기(佛紀)2561년이라고 한다. 

우리동네 이 (@)절은 서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전역에서도 알아주는 아주 유서깊은 절이다.


부처님 오신날이라며 등(燈)공양하러 절에 가자는데 석가탄신일(釋迦誕辰日)은 크리스마스날 처름

성탄절(聖誕節)로 이미 공휴일이 된 적이 오래라 이젠 누구나 다 이 날을 알고 있는 날이지만,...

(아마도 부처님께서는 예수님보다 544년전 쯤 먼저 이 세상에 오셨나 보다)


어릴적엔 엄마 손잡고 절에 따라가 무조건 엄마하는 되로 이부처님 저부처님을 우러러뵙고 고개숙여

"절(拜) 하는 뜻 도 모르며" 엉덩이 처들고 많은 절(拜)을 했던 기억이 스처지나 간다.

그때 추억이 새로워 가신 엄말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고 나 혼자만 아는 쓸쓸한 멋적은 미소를,..

아내가 곁 눈질하며 슬적지나는 말로 오랫간만에 나와 같이 절(寺)에 가니 그렇게 기분이 좋소? 

남의 쏙도 모르고 덩달아 웃는다. (하기야 절(寺)에 모처름 이 얼마만의 부부동반길인가!)


절(寺)로 가는 길에 지금 생각해보면 울 엄마는 운명적으로 그때 감내해가야 할 연약한 여성혼자 힘으로

의식주를 비롯해 어린 애들의 교육까지 스스로 지고가야 할 정말 막막하고 어려운 현실에서 부처님의

원력(原力)으로 사파세계(娑婆世界) 고통에서 우리 집안에 자비(慈悲)로운 구원의 손길을 서원(誓願)하며

그 처름 무릎이 다 닳도록 그렇게 부처님께 의지하고 매달렸던 것이 아니었겠나?..."가슴아프다"


그땔 회상(回想)하면 자식으로서 한 생(生)을 지금 껏 살아가며 한번도 울 엄마 맘을 편안하게 제대로

못 모신 것 같아 생전(生前)에 불효자식으로서 그 죄책감(罪責感)은 늘 쇳덩어리로 짓눌리는 가슴에

맺힌 멍울이...

살아 생전 부모님께 효도 못한 자식들도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돌아가신 부모님한데는

다들 그렇게 효자라하는 옛말이 세월이 더 해 갈수록 실감있게 가슴에 다가 온다. 


코흘리게 (철부질) 때 부처님.예수님.성모님이 누구신지도 모르고 절(寺)을 비롯해 교회나 성당에도

이웃 누나 형아 손에 이끌려 (그때 그 귀한 눈깔사탕이나 과자부스러기 조금 얻어 먹는 재미로

따라 다니며 무수(無數)한 절(拜)과 성부성자의 성호도 끄어봤고 그게 무슨 뜻 인지도 잘 모르며... 

"관세음보살나무아미타불" "아멘"  중얼거려 봤다.


이웃 @ 절(寺)에는 먼저온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이미 절(寺)은 색동(色動) 등(燈)으로 꽉 차,

가려져진 하늘에 틈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빼곡빼곡 매달려 있었다. 

돈을 시주(施主)하며 다는 등(燈)도 좋은 자리 경쟁이 심해 달기가 참 어렵고 힘들었다.

가족의 생년월일과 이름을 쭉 적고 소원청취를 기원하는 맘으로 겨우 틈새를 발견해 달긴 달았다만...

왠만한 집에서는 매년 이때쯤이면 년래행사(年來行事)로 다 한번식 등(燈)달아 본 경험들이 있을 께다.


아내는 두손을 합장해 연신 입속으로 간절히 소망하는 바를 기구(祈求)하며 신들린 사람처름,

내가 보기엔 그의 무조건적 무아지경으로 먼저 등(燈)을 향해 수없이 염원(念願)하며 절(拜)을 한다.

옆에서 성서럽게까지 보이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마음속으로 한 없이 부끄럽고 숙연한 마음이 들었지!

직접 처음 본 아내 모습에 마음속 가득찬 한(限))이 오직했으면 아내도 엄마처름 갈구(渴求)가 저랬셔랴...

아내의 얼굴에서 못난 자식 잘되라고 가신 울 엄마의 늘 기원(祈願)하시는 모습이 겹처저 마음이 한없이

울적하고 먹먹했다.


발원(發願)하는 아내의 성실한 정성처름 가족과 가정을 위해 내가 오직 저런 맘으로 헌신한 적이 있었나?

난, 나를 되돌아 보며 마음속으로 아내에게 미안하고 가여운 생각이 들어 찡해 울고 있는 나를 보았다.


절엔 많은 시주(施主)와 공양하는 행위가 이뤄지지만 특히 초팔일에 등(燈) 공양(供養)은 왜하는 걸까?

스님들 말씀으론 연등을 밝히는 것은 어두운곳에서 밝은 세상으로 향하는 지혜를 뜻하고 부처님오신날 

등을 밝혀서 내 맘에 부처님 한분 모시기를 간절한 바람이라고 ...


아내는 탑돌이와 여러 부처님을 우러러보며 (香)공양, 불전(佛殿)공양(불전함에 돈넣는것) 공양을 하며 연신 허리굽혀 부처님의 가피로 복(福)을 빌고 절을 한다.

이런 여러 공양의 의미는 또 뭣 일까?...

(香)공양은 업장소멸을 기원하고, 불전(佛殿)공양은 복덕구족(福德 九族) 공양은 지혜 총명을 바램인 것같다. 따지고 보면 어떤 위대한 힘에 의지해 깨달음과 복받기를 기원하는 약한 인간군상의 간절함이랄까?


등(燈) 종류와 붙이는 자리(위치)에 따라 등(燈) 값이 천차만별이라 나는 깜짝 놀랐다.


대웅전에 108업장소멸등(燈)은 108만원. 대등(大燈)은 100만원. 소원성취 등(燈) 50만원

위의 등(燈) 달기는 정말로 (계란노란자위)라 몇달전에 예약치 않으면 달수없을 것같은데,

그 돈주고도 서로 못달아 안달하고 등(燈) 달 자리가 대웅전엔 미리 선금(先金)으로 예약돼 아예 없다.


미륵전(운수대길등) 지장전(극락왕생등) 법왕루(만사형통등/학업성취등/1인1등)은 각20만원

이웃을 위한 나눔의 등(가족등) 각10만원. 물론 이런 자리도 빼곡해 비비고 들어갈 틈도 없짐만,

마당등 도량등 각5만원 깨달음 등(1인) 각3만원. 이런 등(燈)은 서민들이 겨우겨우 다는 등(燈)이다.

남보다 더 많은 복 받기를 간절히 욕심내는 사람들의 경쟁심리를 묘한 기분으로 냉정히 바라볼수있었지...


이미 달린 등과 이날 다는 등만 의레짐작해 마음 속으로 계산해봐도 엄청나 도저히 계산해보기조차 어렵다.

실재로 기업에 비유해 본다면 그 수입은 대기업의 재벌급 수준을 넘는 것같아 이런 저런 이유로 신앙인들이 찾는 종교계의 시주(施主)로 인한 기타 수입이 참 놀랄 노자 인 것같다. 

성인(聖人)을 응용한 종교계(宗敎界)의 기막힌 마케팅 솜씨라면 죄(罪)받을 말이 될까?... 

종교당(堂)에 수익(受益)되는 그 어마어마한 금원(金圓)은 다 어디에 어떻게 쓰이나 순간 궁금해 젔다.


(아내는 대웅전에 100만원짜리 등(燈)하나를 턱 달아 봐야 하는데, 못 다는 안타까움을 못내 아쉬워하며)

하지만 5만원짜리 마당 등 하나를 겨우달고 감사해 하고 가슴뿌듯한지 해맑게 웃으며 날 처다 본다. 

부처님이 모든 소원을 다 들어주시리라 철석같이 아내는 믿으며 복 많이 받고 집안이 무탈하길

진심(眞心)으로 염원(念願)하며 기분좋와 간만에 흡족해 하는 모습이 순간이나마 참 행복해 보였지만...

그걸 보란 듯히 100만원짜리 등(燈)하나를 턱, 달아주지 못하는 내가 괞히 아내 앞에서 민망하고 초라해저 

감히 아내와 눈을 맞출 수 없어 마음이 좀 불편했다.


물론 충분한 여유가 있다 해도 나는 등(燈)하나에 그런 거금을 쓰가며 대웅전에 등(燈)다는 걸 마음속엔

동의할 수 없고 당연히 반대다.

사람 마음이란 것이 남보다 더 잘해 더잘되고 더 좋은 것을 받고저하는 욕망이야 물론 다들 있겠지만...


비싼 등(燈)이나 값산 등(燈)이나 그 달린 위치가 어찌됐던 그 안에 들어 있는 등(燈)하나가 빛이는 빛은 

한결같이 다 똑 같은 하나의 빛(光明)이아닌가?

당연히 부처님께서는 자애(慈愛)로움으로 세상의 온누리에 차별(差別)의 광명(光明)을 주시지 않는다.


돈을 많이주어 등(燈)을 달았다해서 그 돈 만큼 복(福)을 더 많이 받는 것은 절대로 절대로 아니지!...

기복(祈福)을 비는 등(燈) 하나에도 인간의 과시욕과 우월감으로 그 가진 돈의 표현에 따라 신분에 차별감

(差別感)을 갔나보다.


이런 형식들이 부처님과 예수님의 참 뜻이 아니다라고 단호한 내 생각을 아내에게 말해줄 자신이 없었다.

순수하게 꿈꾸며 기원(祈願)하는 아내의 간절하고도 아름다운 소망과 애절한 맘에 초(酸) 칠 것같아서... 

나는 인간을 초월한 성현(聖賢)분들을 진심으로 경배(敬拜)하지만 딱히 어느 한분에만 매달리고 싶진 않다. 


절(寺)이나 교회나 등등 열심히 성전(聖殿)을 찾아 다니며 마음이 없는 형식적인 기도만하면 뭐하나?

부처님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열심히 따르고 그 공부하지 않으면 참된 신앙인이라 할 수 없지!  

종교를 믿건 안믿 건간에 그건 개인의 순수한 마음에서 울어나는 자유라 부처님과 예수님이라도 강요할

권리는 아에 없을 것같다.

말하는 모습이나 생활태도가 성인(聖人)을 본 받아 닮게 살아 간다면 구태여 성전(聖殿)에 안가도 그는

신앙인으로서 신자(信者)일 것이다

사람이 신앙(信仰)을 가진다는 것은 안가지는 것보다는 가장 인간적(人間的)인 인간의 참 모습이지!... 


나의 생각 한구석에선 등(燈)하나가 뭐라고 다 부질 없는 형식이고 순수 종교에 기복신앙(祈福信仰)

침탈(侵奪)한 결과가 오늘날의 형식적(形式的)이고 일부 타락해 변모해가는 종교의 모습이 아닐까?... 


하지만 성인(聖人)을 멋대로 감히 입에 올려 범인(凡人)의 잣대로 성현(聖賢)을 이렇쿵 저렇쿵 평가하는

씨건방을 떤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아주 막대 먹은 인간이고 절대로 그런 우(愚)를 범하는 행위를 사람의

탈을 섰으면 삼가해야 할 것이다.(성현의 말씀은 무조건 따르드라도 무해(無害)하고 유익(有益)하다.


(인류역사상 종교가 인간을 구원하고 사람을 선(善)하게 하는 참으로 좋은 역할을 해 온 것도 사실이지만,

반면에 인간성(人間性)과 삶을 파괴하고 인간을 종속시켜 해악(害惡)을 끼친일도 무수하다.

근래들어 예를 들자면 오늘날 IS대원들이 세계 도처에서 저질고 있는 테로행위도 결국은 이슬람의 종교적

가치를 훼손하여 타락시키고 변절된 모습의 발호로 종교가 그 순수성을 잃을 때 그 처름 위험한 일도 없을

것 같다)


우주(宇宙)에 자비(慈悲)로운 큰 기운(氣運)이 있어 빛 광명(光明)이란...

세상과 사람에게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고 다 공평하게 온 누리에 빛처 주는 것인데

받는 각자(各者)의 그 품성과 마음자세에 따라 그 인생(人生)길이 변화무상(變化無常)

해 가지 않겠나?


지금 일부종교인은 순수종교에서 인간적인 욕망으로 약간 오염되고 점철(點綴)돼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응용하고 그 심리에 맞추어 열심히 성전(聖殿)을 찾아가 기구(祈求)하면 복(福)받고 모든 소망다 이뤄질 것처름 기도(祈禱)로 현혹(眩惑)하는 것 같은...

그 사람이 종교를 믿건 안 믿건 간에 염원(念願)하고 기도(祈禱)하는 삶의 생활 자세(姿勢)는 참 되다.


당연히 성현(聖賢)의 가르침을 따르고 경배(敬拜)하며 선(善)하게 살아 인간공동체(人間共同體)에서 서로의 관계가 한알의 밀알이 돼 의지하고 배려하며 다 함께 너와 네가 좋도록 하는 관계의 삶은 바람직하다.


4월 초팔일 연등 행사에 관한 고려사 (高麗史) 최초의 기록을 보면 고려의종왕 때 백선연이 4월 초팔일에

점등(點燈)하고 3일 낮과 밤에 등(燈)을 켜 놓고 미륵보살회(彌勒菩薩會)를 행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런 연등회는 조선태종왕 15년인 1415년 이후에는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 다고 한다만, 그 전통은 은은히

지금까지 오늘날 우리에게 계승되어 오고 있다.


부처님 정법교단 춘천 현지사의 아름다운 풍광과 4.8 연등


2017.7.01.

-남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