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의 이야기라고 할까?

3) 박근혜 대통령각하

단해 2015. 3. 12. 06:35
 

1) 제 1 공화국(1948~1960)

初代 이승만대통령님께서는 해방후 그 어렵고 힘덜었던 시기에

南韓만이라도 단독국가로 대한민국을 건국하신지 얼마되지 않아

北傀의 金日成 남침으로 인한 (6.25전쟁때) 反共(滅共)을 國是로 하고 休戰反對와 北進統一위해 온 몸을 다 받처 당시에 약소국의 힘없는 신임대통령으로서 外勢의 막강한 열강들과 맞서서, 슬기와 지혜로운 외교적 솜씨로 그때의 國難 위기를 잘처리해가시며 나라의 獨立保存과 국민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다받처 孤軍奮鬪하시며 헌신하셨습니다.

6.25의 전쟁으로 인해 전국토가 폐허가 되었고 그때 너무

가난한 우리의 현실에서 당시 먹을게 없어 많은 국민이 배곺아 고통을 받고 있을 떄 미국과 우방의 원조를 이끌어 내어 가난한 국민을 남의 나라에서 구걸하다 싶이하여 원조로 먹여 살렸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미국과 유엔군이 잡아다 준 반공포로들을 參戰國과 相意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無血革命 하 듯,

대한민국의 主權을 가진 대통령권한으로서 석방해버리니-

전 세계가 아니! 정말 그럴수가 있나~? 멘붕에 빠지게하며 미국과 유엔군을 깜짝 놀라게 경악시켜가면서 미국의 코를 꿰어

그때 한미동맹(방위조약)을 맺게끔하여 오늘날까지 우리가

지금 이 시간에도 이불속에서 편히 잠자게 해주었습니다.

당시 東邦의 별볼일 없는 조그마한 나라에서 미국은 손때고

싶었지만 늘 한 수를 앞서가며 거미줄을 치는 노련한 李대통령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友軍들은 질질끌려 다닐수 밖에 없었던

현명한 상황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랬음으로 또 우리가 안보상 위급할 때는 美軍이 앞장서서 자기들 피(血) 흘려가며 대한민국을 防爲하게 끔 한, 政治的先見知明이 있었던 탁월한

知略과 慧眼을 가지신 민족의 泰山같은 분이었습니다.

그때 2차 대전 후 해방을 맞고 바로 얼마후 6.25전쟁 등, 당시 우리국민들이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하였고

감당할 수 없었던 세계적 急變換의 흐름속에 정말로 견디기 어렵고 힘들었던 시대가 새차게 휘몰아처

나라와 민족이 다함께 희망을 찾지 못해 파산 직전의 위기로 삶이 고달프게 계속되던 정말로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해방 당시 막태동하려는 우리국가의 모양새를 다듬어 가고 있는 그 혼란기를 틈타 그때도 발목잡기를

일삼았던 진보좌파의 급진적 행태와 공산푸락치 기타 從北추종세력들 및 국가의 운명이야 어찌되던 간에 

外勢에 의존해 자신의 權慾과 榮達만을 위해 민심을 홀리는 사이비 애국자 등등을, 온몸으로 홀로 막아

힘겹게 싸우시며 萬難을 극복하시고 나라와 국민의 방패가 되셔서 內外의 敵들척결해갔습니다. 

 

우리가 2차대전 승전국인 美. 蘇聯 (지금의 러시아)의 종속적인 신탁지배냐? 또는 공산국가와 민주국가의

선택적 갈림길에서 민족이 혼란한 비전으로 방향 감각과 길을 잃고 여러갈래의 주의주장으로 암흑속에서

방황 할 때 입니다.

 

 

그 혼란시기에 이 나라에 國民的 求心點을 모아 일치단결하게 하여 

自由民主主義 의 基本틀로 大韓民國을 建國하셔서 지금의 우리에게

(民主政府體制) 遺産으로 상속해주신 위대한 初代建國大統領 雩南 李承晩박사님이셨습니다.

 

6. 25의 그 순간 그분은 당시 我軍이 北進을 할 때 UN군 사령관이셨던 맥아더장군과 意氣投合하여

北進統一을 주장하시고 압록강 이북인 중국의 일부 만주지역까지 폭격하여 당시의 中共軍을 중국내륙으로 밀어내고 한반도를 통일시키는 반면 만주일대를 放射線으로 벽을 처서 韓半島쪽으로 다시금 중공군이 越境하지 못하게 할 원대한 포부와 <"전시작전계획">을 수립하여 강행하려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약 100여년 정도는 중국이 다시 일어나 힘을 쓸 수 없게 끔 하고 反射的으로 우리의

南北統一과 함께 중국에 잃어버렸던 옛 우리 영토인 <"고구려"> 까지도 수복할 수 있는 꿈을 갖으시고

北進을 주장하셨습니다.

당시 3차 大戰을 우려한 겁쟁이 미국 <트루먼대통령>맥아더장군을 UN군 사령관직에 해임함으로서

天帝一吼의 天佑神助 (천재일후의 천우신조)한 기회를 놓 첫 음은 우리나라의 운명일까요?

다시 돌아 올수 없는 그 좋았던 통일의 기회를 잃어버린 그때를 회상하면 지금도 애석하고 안타깝습니다.

 

만일 그때 그랬드라면 한반도의 통일은 물론, 지금의 중국은 <G 2> 에 끼일 수도 없었을 것이며

일정기간 동안은 국제적인 압박에 의해 상대할 가치도 없고 (전연 힘을 쓸 수도 없는) 한동안은 轉落한

나라가 되어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처름 强國인 중국은 볼수없었을 것이며 세계는 약 1 世紀 

정도는 전쟁과 긴장이 없는 평화의 시대를 구가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아집니다.

 

2) 제 2 공화국(1960~1961)

당시 民主黨 (張勉)정부4.19로 인해 공짜배기로 나라를 통채로 얻은 政權으로서

<데모로 얻은 정권이다 보니 매일 자고나면 또 데모의 연속이었고 데모공화국임에도

불구하고 新. 舊派로 갈라저 主權다툼으로 자기네들끼리 內分하여 權力투쟁하느라고

서로 싸우기 바빠서> 정치 정책 등엔 대응능력이 없었고 너무나 無能하였습니다.

지나치게 당시 民衆과 迎合하려고 사회 여론의 눈치를 살피다보니 자유를 방임하여

國家社會의 혼란이 극에 달해 민주당 정권은 준비되지 않았던 집권으로서 결국은  

治國統政遂行能力이 전연 없었습니다.

 

이 틈을 노려 北傀가 다시 남침할 國家安保상의 심각한 우려가 風前앞 등불 같았을 때!!!

<反共을 國是로 하고 통일을 위한 實力培養> 을 약속한 愛國心으로 궐기했던 박정희

軍部 (쿠테타) 勢力에 의해 失權하면서 民主黨政權 그로인해 단기간에 막을내렸습니다.

 

3) 제 3. 4. 공화국(1961~1979)

박정희대통령께서는 통일정책으로 1974.7.04. 南北共同聲明을 천명하셨고 최초의 남북한 합의문서에 의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원칙> 지향하셨으나 당시 南北對話는 북측의 일방적인 중단선언으로 오래지속하지 못하였습니다.

 

오천년간 가난을 숙명으로 알고 후진국으로 살아왔던 우리에게 박정희대통령께서는 해방후 온 나라의

벌거숭이 산을 울창하게 우거진 산림으로 바꾸셨고 사방팔방으로 국토의 혈맥인 고속도로를 개통하셔서

철강산업. 전자산업. 조선업. 자동차산업. 중화학공업 등등, 눈부신 <경제발전과 수출입국> 을 이룩하시며 우리나라를 선진대열에 까지 올려놓은 탄탄한 <국가기반> 을 창조하시고 (無에서 有를) 그것도 세계에서

그 유례를 어느 민족을 통해서도 찾아 볼 수 없었던 단기간에 달성해냈습니다.

 

나라의 基盤이 되는 根本的인 資本을 創造축척하여 後代에 물려주시고 民主化와 統一을 위한 礎石도 以北에 對比해 實力培養으로 확실하게 優位로 이루어 주고 後任政府가 이어가도록해 주었습니다.

"박정희대통령께서는 국가의 資本이 바탕이 되지 않은 한" 자유민주주의가 정착할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祖國近代化와 自立經濟는 統一의 첫단계임을 說破하시며 蹶起時에 국민에게 한 경제발전과

정치사회전반에 대한 개혁 약속을 충실히 이행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나라와 국민을 富强하게 하여 잘살게 해주신 領導者이시며 半萬年 우리 역사와 나라에

雙全碧海(쌍전벽해)와 天地開闢 (천지개벽)의 기적을 이루어 세계에 그 결과를 보여주셨습니다.

따라서 빨리빨리 모든분야에서 개혁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사회각계층간 불평불만도 많았지요.

그로인해 가장 가까웠던 친구이자 부하인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저격으로 순직하였습니다.  

 

정치의 첫걸음은 비록 軍部구테타로 始作하셨지만 大韓民國을 결과적으로 革命을 꽃피워

昇華시켜주신 우리 歷史에 길이 남을 彗星처름 나타난 훌륭한 民族의 指導者이셨습니다.

 

李承晩. 朴正熙. 두 분 대통령님을 일부사람과  그리고 進步左派와 從北들은 독재자라고 "욕" 하고 있지만

그의 대부분의 국민은 <공칠과삼(功七過三> 로 기억하며 두 분 대통령님의 역사적 위대한 업적과 함께 그 당시 時代的  時機에 적합한 결단과 강력한 리더쉽으로 좋은 정책들을 많이 실현(실천) 해주셨음을 

대부분의 국민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일부 사람들이 두분에 대해 어떻게 비난하고 폄하

하던 간에 지금 우리가 풍요속에서 잘살아 가며 自由民主구가하고 세계가 우릴 달리보는 것은 다 이 두분의 정치적인

훌륭한 業積과 기본적인 초석(礎石)의 바탕 덕분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우리민족이 역사적으로 유달리 複雜 多難한 많은 시련의 과정을 격어가며 지구상에 남아 있는 단 하나의 분단국가로서 가야할 종착역인 통일은 저기에서 손짓하며 남북을 함께 부르는 같습니다만, 우리가 어떤 색갈 어느방향 어느 길을 선택해서 가야만 할지 지금이 대통령님을 비롯해 모든

국민이 다 함께 더불어 衆知를 모아 봐야 할 <"놓처서는 안될"> 중요한 싯점이고 時機인 것 같습니다.

우리민족이 역사속에서 늘 핍밖과 고통을 받아 온 것은 우리가

그간 自存自立힘이 없었고 항상 意見分裂로 和合協同할줄 모르고 內分만하여 "민족이 일치단결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가 스스로 약해지며 힘을 갖지 못하는 원인일까요? 

어찌보면 民族的인 炳弊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국민 개개인은 세계 어느민족보다도 더 똑똑하며 능력있고 훌륭하지 둘이 모이고 셋이 되며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모일수록 어떤 목표에 힘을 보태지 못하고 자연히 각각 分裂

하여 끼리끼리 모여 朋黨을 만들고 각자의 개인적인 榮達과 利益만을 위해 서로가 화합단결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우리의 DNA안에 있을 지도 모를일 입니다.

우리가 역사상 중대한 기로에서는 언제나 서로 굳게 손잡아 같이 힘이 되지 못하는 현상이 항상 우리를 虛弱하고 불행

하게 만드는 원인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우리 모두가 삶에 힘들고 너무 바빠 생각할 여유가 없겠지만 한반도와 중국만주일대가 우리의 것이고 일본의 대마도 또한

우리의 영유권임을 잊지말며 남북의 동포가 우리는 하나라는

틀 안에서 힘을 모우고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한번 쯤은 살아가면서 늘 공감해 보는 여유가 있는 길 안에서 통일의 빛을 찾을 수 있을 것같습니다.

지금 世紀의 韓半島 현실은 <北側의 血盟은 중국이고>

南側의 血盟은 미국임을 우리가 항상 명심하고 잊지 않은

안에서 통일을 바라보고 생각해 가며 우선은 兩大國부터

시작해 통일을 잘다루어 나가야 할 것같습니다만,

(4페이지에서 계속)

2015.03.12

-남경-

  (이글은 2014.11.27 작성하였고 동시에  청와대에 우편발송했던 내용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