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올림픽 역사상 처음출전한 영국런던의 제14회
올림픽에 대해 당신은, 그때 그 일을 얼마나 알고 있나요?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난지도 제법 날자는 흘러갔지만 그 감격의 여운은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아직도 남아 있다. 김연아 율동의 모습과 인터뷰 때의 의연함 그리고 이상화 심석희의 분투했던
모습 등등, 메달을 땄건 못받었건 간에 모든 선수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었다.
요즘에 와서 우리에게 이런 즐거운 날도 있지만 우리가 첫 올림픽참가 때를 회상하면 가슴이 쓰라린다.
그런데 올림픽정신이란 게 과연 뭘까?
사람마다 생각하기에 따라 여러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론, 서로를 배려해가면서
공평하고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지구촌 사람들의 우정과 우애를 다지기 위한, 승패를 겨루어-
(승자와 패자) 가 다 함께 손에 손잡고 즐기는 축제의 한마당이 아닐까 싶다만!
현대의 올림픽은 나라의 국력과 국민의 자존심을 건 (과학적인 전쟁과도) 같은 세계 모든 사람들의
스포츠 향연이라고 할 만하다.
우리나라가 1948년 8월 15일의 건국은, 1945년 8월 15일 제 2차 세계대전이 일본이 무조건
항복함으로서 전쟁은 종결되었고 당시 우리가 건국하기 직전엔, 미국과 소련의 세기적 이념과 무력대립
으로 인해 세게가 다 영향을 받는 것 중에서도 특히 우리는 38선을 기준해서 민주와 공산의 이념으로,
남북이 미국과 소련의 외세(外勢) 때문에 대립하고 나라가 분단(分斷)하게 되었다.
시대도 혼란서러웠지만 국 내외가 양분되어 무척 앞날이 불투명한 시절이 지속되고 있을 때!
(당시 1948년 7. 29부터 ~ 8. 14까지 영국런던에서 제 14회 세계의 올림픽이 개최 되었다)
그때 소련이 점령한 이북엔 가짜 김일성장군을 내세워 공산정부를 세울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고-
이때 통일 된 자유민주국가 건설은 불가능하여 남한만이라도 자유 대한민국을 건국하려는
우남 이승만 박사와 미군정청(주한미군사령관 하지장군) 및 극동군사령관 맥아더장군간에 갈등과 반목을 되풀이해가면서 남한만이라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긴밀한 협조를 이끌어 내는 반면 또한 상호 협조하여
런던에서 개최되는 제14회올림픽에 한국선수단을 참가시키기 위해 이승만박사는 미국측에 강력하게
밀어 붙처서 참가 결정은 이루어 냈지만, 우리의 현실은 선수단을 파견할 수송수단도 없었고 선수들의
경비도 준비할 수 없었으며 참가를 위해 자체적으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너무나 가난한 나라의 형편이었다. 일본의 36여년간 압제 하에 해방 이후 초기라 가진 것이라곤 빈털털이고 힘없던 민족이 동방에서-
국가로 태동하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은 런던으로 선수단을 파견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고민을 하고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 시절 우리의 국민소득이 채 50 불도 되지 않은 세계의 최 빈국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잘알고 있는 미국측이 이때 우리를 적극도와 줘, 1948년 런던올림픽에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를 앞세우고 코리아라는 나라의 이름으로 국제무대에 첫 출전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당시 민주독립국가로서 출범하는 "신생국(新生國)코리아" 라는 나라를 올림픽을
통해서 우리민족도 이제 독립해가며 나라가 있다는 것을 전 세계만방에 처음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선수단 출전을 지원하기 위해 미군(美軍)의 "선수단 수송작전" 비화(秘話)가
지금까지 잘 알려진 바가 없어, 우리 국민 대다수는 그때 숨겨진 일들을 잘 알지
못하고 있지만...........
1948년 7월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첫 올림픽 출전이 있었던 런던올림픽 당시!
미군(美軍)은 한국선수단 67명을 서울에서 런던으로 보내려고 해군수송선까지 동원하여 마치
군사 작전을 하듯이 "선수 수송작전"을 펼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미군 극동사령부의 비밀문서에서 밝혀진바로는 66년 전 한국대표단은 "미군극동사령부"의
지원과 주선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열차를 타고 이동한 뒤 부산에서 일본 후쿠오까까지는 미해군의 특별 수송선을 탔다. 이어 요코하마까지는 또 열차를 탄 뒤, 미국여객선을 타고 홍콩으로 이동했으며 홍콩에서,
미군이 미리 주선해준 여객기 편으로 또 바꾸어 타고 그때는 몇날 몇일이 걸려 천신만고 끝에-
런던에 도착할 수 있었으며 지금 되돌아 본다면 너무나 험난한 꿈 같은 현실이었다.
(이때 미군은 돈 없는 우리를 대신해 선수들이 런던에서 사용할 비용도 런던은행에 입금시켜 주었다)
이런 기록은 미군의 비밀문서에 선수들의 이동시간이 분단위로 기록되어 있었고 이처름 치밀한
미군의 "수송작전" 덕택에 한국선수단은 날자에 맞추어 런던에 무사히 도착해 우리가 반만년
역사에서 올림픽이란 첫 출전에 성공하였고 미군덕택에 그런데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대회는 코리아를 비롯해서 세계 34개국이 출전하였고 출전 국가 중 코리아는 파나마와 함께
공동 32를 기록했다.
그렇게 당시 나라의 가난한 사정과 남북으로 갈라저 사사건건 이념대립으로 발목을 잡히고 있었던 정치적
경제적 열악했던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선수들은 처음 출전한 미들급의 김성집선수가 역도에서 동메달, 복싱의 한수안 선수가 플라이급에서 같은 동메달을 획득해!
(아무런 경험도 없었던 우리가) 나라의 꼴이 억망이었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첫 처녀출전한,
첫 경험에서 그나마 덕택에 좋은 성과로 쾌거를 이루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우리선수들이 지금과 같이 올림픽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때 그날의
시작이 있었음으로 오늘 날과 같이 발전적인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밑 그림이 되었던 것이다.
다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근대 올림픽의 탄생은 프랑스 귀족출신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Coubertin) 남작의 시작으로부터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조직되었고 1896년 그리스 아데네에서 제 1회 올림픽이
열리기전 부터 근대 올림픽은 공식, 비공식, 출범이전과 이후에도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운동이 활발이
전개되어 오대양육대주에서 오늘날과 같은 올림픽으로 발전해 왔다.
우리 스포츠의 육성 발전은 그때 제 14회 영국런던 올림픽참가를 효시로 하여 1988년 우리가 처음으로
서울올림픽개최 시(時) 까지는 우리국력의 신장과 함께 우리역사와 더불어 여러가지의 의미가 있어
그때를 회상하면 참으로 감개무량하여 눈물이 난다.
1988년 당시 159개국 8,465명이 참가한 서울올림픽은 올림픽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기록한 대회로
기억되어 있고, 종합성적 4위(금 12개 은 10개 동 11개 )로 우리가 합계 33개의 메달로 뛰어난
성적을 보여주었다. 이런 결과는 국력의 신장과 더불어 전략과 집중을 통한 스포츠 육성정책의 성과가
결실을 맺어 가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오늘날까지 계속잡음이 일고 있는 스포츠계의 비리를 잘 척결해서,
다가오는 평창 올림픽에서는 좋은 성과도 중요하지만 국제적으로 신뢰와 존경을 받는 대회로 우리가 세계에 각인시켜 가며 다른 나라들이 본 받아 갈수있도록 세계인으로부터 정말 멋지고 훌륭했다란~
올림픽이었다고 갈채를 받아가며 깊은 인상을주어 유종의 미(美)로 마감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또한 공정 공평 정직하게 정정당당한 승부에 의해 각 메달이 획득되어 저야지 개최국의 프레미엄과 지나친 애국심(愛國心)으로 억지로 메달을 탈취했다는 뒷 소리를 듣게 되는 올림픽이 되어서는 아니되고 대한민국과 국민의 명예와 자존심을 각 나라와 선수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느낄수 있는 아름답고
매력적이어 누구나 다 잊을 수 없는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으로 기억되고 기록되어저야 한다.
대한민국과 국민들이 곤란하고 정말 힘들었고 또한 남의 도움없이는 출전도 할 수 없었던 때를,
나라와 국민은 잊어서는 않될 것이다 당시 우리를 도와준 미국(美軍)을 우리가 지금에 와서는
반미(反美)니 친미(親美)니 보수니 진보니 종북파라고 갈라저 이념을 앞세우기 전에 인간애(愛)로서
감사한 은혜는 당시의 미군(美軍)들을 영원히 잊지말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모르는 우(愚)를 범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않되겠지요)
그리고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잘모르겠지만 불과 40 ~50여년전만 해도 우리 모두가 얼마나 배곺아
하며 가난하고 못살았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발전과 풍요로움은 모두가 얼마나 비교적 다들 잘살고 있음을 잘모르고 있는 것같다.
결과적으로 젊은 세대가 꼰대니 보수꼴통이니 하고 비아냥 거리는 흘러간 70,80,90 100~ 이상의세대들이 피눈물나는 노력과 함께 박정희의 지도력에 (5. 16군사혁명) 이 역사의 분기점이 되었다.
그때 박정희의 민족적 민주주의 와 함께 잘살아보자는 국민적 의욕과 개발독재가 합심하여 이루어 낸 오늘날의 발전을 가저온 대한민국임을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며 이 것을 부정할래야 할 수 없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임을 모두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박정희의 구테타가 혁명으로 승화한 결과이고 이의 평가는 대한민국 역사의 진실한 몫이리라!)
따라서 지금의 20,30,40,50,60의 신 세대는, 앞선 선대들의 잘살아 보자는 피와 땀과 눈물을 이어
받아 아주 가까운 시일안에 남북을 자유통일시켜 우리국가와 민족이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예술 등등,
세계의 중심국가가로 우뚝 서도록 만들고 세계를 선도해 나아 갈 나라로 (발전육성시킬) "의무" 가 있다 할 것이다. 후대들 모두가 목표에 충실한 사람들이 되어 우리가 잘살며 부강(富强)하고 행복한 나라 행복한 국민이 되도록 (민족의 대박을) 이루어 내어 앞으론 함부로 남의 나라 남의 민족이 우리를 넘볼수 없도록,
자립(自立) 자강(自强)한 통일된 독립국가를 이루어 내고 이 성서러운 목적을 완수(完遂)하는 "보답"을
지금의 후대는 선대들 앞, (또는 영전에서) 의무를 다 해냈음을 꼭 "고(告)"해 주시기를 바란다.
대한민국과 국민이 한마음 한 뜻으로 미래의 목표를 지향할 때~
나라의 발전과 민족의 융성함이 우리 시조(始祖)단군(壇君)으로부터
많은 축복을 받아 그 뜻은 꼭, 이루어 지리라!
-남경-
201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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