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 마음을 자극해서 표좀 얻어보자는 수작인가?
시도 때도 없이 너무 많은 것을 울겨 먹느게 아닌가!
5. 16.은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저버린 불순한 일부 군(軍)의
불법쿠테타로 헌정중단이다! 유신독재로 인권, 민주, 탄압이다!
등등- 이미 5.16.이 지난지 50여년간 곰탕국물 우려 먹듯 식상할
레파트리를 녹음기 돌리고 집권지향세력은 계속 재탕 삼탕으로
끓여먹는 것이 자신들께 더 없는 보양식인 줄 알고 착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시 군인들이 왜, 일어나 (쿠테타)로 봉기하였을까?
그 발발 사태의 원인제공은 어디에 있으며 책임은 누가저야 하나!
당시 집권층인 민주당인가 또는 박정희를 비롯한 혁명군인가?
책임소재를 교통사고에 빗된다면 둘의 쌍방과실일까? (그게 글세다)
"쿠테타로 뒤엎어진 정권은 지금의 민통당,당시는 민주당이었다"
그러한 때도 민주당은 당내 신파(장면) 구파(김도연)의 양대 세력간
정권다툼으로 국가통치의 정치와 법질서 및 행정은 이로 인해-
이미 실종되었고 무법천지의 데모공화국이 돼어버린- !
당시 민주당정부에 넌덜머리가 나고 실망에 빠진 국민들은 5. 16.을 때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열열히 군가를 부르짖고 행진하는 혁명(쿠테타)군을 모두가 거리에 나와 아낌없는 환영을 했다.
그 시절 기존세력이었던 민주당계 사람들은 쿠테타로 인해 누리고 있었던 모던 권력과 혜택이 한꺼번에
날라가 좋았던 시절, 달콤함을 잃고 말았으니 그들 기존 세력 입장에서는 5. 16.발발사태가 억울하고
분하여 그 일만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잇빨을 갏아 먹어도 시원찮을 것이다.
당시 민주당정권의 무능과 실정(失政)으로 인해 국가사회전반이 마비되고 혼란이 극심하여 민생은 도탄에 빠저들었으며 통치(統治)와 법(法)이 방향 키를 잃고 나라의 갈길을 찾지못해 우왕자왕 정신을 못차리는데
그기다가 진보좌파까지 데모에 합세해 불을 끼어 얹어 충동질함으로 이북의 김일성은 또 다시 남침을 저울질하며 엿보고 있어 온 나라가 바람앞 촛불처름 심각한 위기에 빠저들었다.
국민들은 모두가 공황상태에 머리가 돌아버려 오죽하였으면 차라리 4. 19.가 안일어 났드라면 하고
4. 19.를 발발을 원망하며 4. 19.가 난 것을 후회하고 있기까지 했다.
국가안보와 국민의 생명 및 안녕과 재산 등등이 한꺼번에 무법천지와 또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처절하게 파괴파멸 되어갈 우려와 불안이 날로 팽배해저 민심이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폭팔직전에 이르러-
더 이상 국가를 방치하면 전쟁 또는 민란(폭동)이 터질 시한폭탄같아 온 나라가 긴장에 휩싸여 있었지만! 당시 집권정치인들로서는 나라를 바로 잡아 세울 수 없다는 판단하에 어쩔 수 없이 국토방위와 국민의
안녕을 보호하기 위해 차선의 대책이 없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5. 16.과 같은 쿠테타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국가파멸의 위기상황이 었다.
근래 5. 16.이 혁명이니! 쿠테타니! 말들이 많은데 혁명이면 어떻고, 쿠테타면 또 어떻단 말인가?
역사관이 어떻고 저떻고 하여 문제제기를 일부 정치세력들이 늘 일삼고 있지만 그들은 군이 정치에
개입할 별미를 주었고 헌정중단을 가저온 책임을 저야할 사람들 입에서 그런 소리로 왜곡하는 것은
자가 당착이다. 또 세계사에서 옳 곧게(옳고 바르게) 평가 기록한 역사관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역사의 기록이란 오랜세월이 지난 다음 현재를 담당하고 있는 강자편에서 강자의 의지가 스며들어
쓴 기록이 대부분 아닌가? 역사의 기록이라하여 그대로 다 믿고 꼭 공정하고 형평성에 맞으며
옳바르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지금와서 600여년전에 태조이성계가 국명(國命)을 어기고 위하도에서 회군(回軍)하여
군사반란으로 당시의 왕조를 뒤엎고 왕위를 찬탈하여 스스로 왕에 등극한 것을!
보는 시각에 따라 혁명이라 할 수도 있겠고 쿠테타라고도 할 수있겠지만 (쿠테타에 의한 혁명이다)
혁명이라하여 정당화되어 꼭 선(善)이라고만, 할 수 없고 쿠테타라하여 부정당하기때문에-
꼭 악(惡)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시 그 싯점에 그것 과의 당위성이 판단의 기준이라 할 것이다.
문제는 그때 그 당시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엄연이 있었다는 그 실체을 부정할 수가 없고-
이제는 기정사실화 되어 누구나 알고있는 그 사실은 이미 다 인정하고 있는 지나간 과거사로
그 사태의 결과가 현재까지 어떤 유종의 미로 이어저왔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핵이다.
혁명당시 그 시대를 살았든 사람들의 목격과 실체적인 경험에 의한 현실적 평가가 제일중요한 것이지!
모든 역사의 평가는 그 실체를 보지 않고 경험해보지 않은 그 뒤의 기술임으로 현재의 그 기록이
꼭 옳고 진실만을 기록했다고 볼 수 없다.
결국 태조 이성계는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자신의 가문(家門)이 왕통을 대대손손 이어가는
600백여년간의 이익을 챙겼지만 오늘날 대중이나 역사가들이 어느누구 한사람 쿠테타에 의한 혁명으로 수많은 남의 피를 흘려서 얻은 이태조의 왕이란 자리이지만 그 선(善)과 악(惡)을 시비걸고 태조에게 역사적으로 하극상이니 군신의 의를 저버린 비열한 배신자라고 성토하는 사람들은 없지 않은가! - 왜냐하면?
이미 일어났던 과거사의 일이고 이씨조선이 많은 세월동안 기정사실화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정희는 혁명을 성공하고 태조 이성계와 비교해서 자신에게 돌아간 이익이 무엇인가?
목숨걸고 혁명하여 남의 피를 흘리지 않게 하며 눈부시게 나라와 국민의 발전을 가저다 주고 많은 삶의
혜택을 국민들께 주었지만 고맙다는 좋은 소리보다도 나쁜 욕만 실컨 얻으먹으면서 결과적으로 자신과
영부인께서는 두분 다 같은 민족의 흉탄에 저격받아 생목숨 잃고 타계하여 지금 한줌의 흙으로-
산화한 것 뿐 아닌가?!
5.16.은 당시 민주당의 장면(총리)정부가 4. 19.덕분에 가만히 앉아서 정권(政權)을 힘안들이고
그저 먹기식으로 굴러온 복(福)이되어 최고의 수혜자로서 아주 손 쉽게 집권하게 되었다.
민주당은 집권하기 전부터 당내 신파 구파의 권력 싸움이 있었던 터에 집권하지마자 정치의 미숙함과
국정수행의 미숙과 무능으로 무법천지로 변한 나라꼴이 혼란해지고 불만이 가득한 민심은 내일을 알수
없는 희망이 절망이라! 속수무책인 민주당정부를 다시 뒤엎고 나라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성토하고
있었던 때이었다. (답답한 국민들은 국가사회전반에 뭣인가 큰 변혁를 바라고 있었던 절박한 때)
당시 육군소장이었던 박정희가 나라가 망하여 없어저 가는 이런 무법천지의
꼴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그는 구국(求國)의 혁명(革命)을 선포하며
자신의 목숨걸고 1961년 5월 16일 봉기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역사는 당시를 평가절하하여 쿠테타로 정의하고 있지만 역사의 평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어디까지나 사실이 중요한 것이고 그 역사의 기록이 어느편에 서서 중심을 잡고 기술한 것인지 몰라도
좀 더 오랜 세월을 두고 재평가 해 갈 때 기록이란 늘 강자편에서 엎치락 뒷치락 할 것은 분명한 일이다.
나라의 기본법인 헌법과 기타 법률 및 규칙 등등을 항상 개정해 가듯이~
박정희소장은 5. 16. 혁명(쿠테타) 성공후에 제일성(一聲)이, 국헌(國憲)을 존중하고
모든 국제조약을 준수한다고 선언하였다(다른나라의 예들은 일체의 법을 존중치 않고 일방적이다)
당시 헌법수호의 최고책임자인 민주당 윤보선대통령께 혁명성격상 사전에 승인받을 형편은 아니었고
거사후(去事後) (혁명(공약)을 대통령께 합법적으로 재가 받아) 민주당 장면내각을 해산시키는 반면
자신의 봉기목적인 군사혁명공약을 공표하고 일정기간 계엄하에 공약수행을 착착 실천해 나갔다.
혼란한 정국을 정리하는 방식은 당시 정부나 정치인으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능력)사안임을 알았고
불법적 쿠테타에의해 민선정부를 뒤엎었으나 (그후 혁명과업수행은 당시 대통령의 재가를)받아
합법적으로 진행한 것에 주목해야 하고 헌법을 지키며 혁명을 한 이런 유형의 혁명은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일로 (쿠테타에 의한 평화적으로 성공한 혁명이라 할 것이다)
원천적으로 이 군사혁명의 뒷받침은 당시 집권층인 구정치인이나 특혜속에 있었던 기존기성세대를
제외하고 남어지 국민 절대다수가 오랜 가뭄에 장마비 나리는 것 처름 쏙시원하게 군의 혁명을
반기며 두손들고 열열히 환영하고 협조한 것이 다른나라의 예와 확연히 다른 차이점이라 할것이다.
어느나라에서나 보드라도 쿠테타나 혁명에의해 정권이 붕괴될때는 당시의 집권층 등등-
기존기성세력들은 왕이던 대통령이던 철저히 붕괴시키며 처형하고 피비린내가 나면서 혼란한
정국을 정리해 안정시켜 나가지만 박정희의 혁명(쿠테타)엔 피바람부는 그러한 혹독한 일은 일체 없었다.
오죽했으면 당시 대통령윤보선은 군(軍)이 들고 일어난 것을 보고-
"드디어 올것이 오고야 말았다"라고 자신의 "장면정부실책"을 자책하면서!
군(軍)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그 당위성을 인정하고 일정기간 군사혁명정부에 상징적 대통령으로 남아서
혁명(과업)성공을 위해 도와 주다가 하야를 한바 있다.
당시 주한미대사와 미8군사령관이 윤대통령께 군통수권발동을 요청하면서 그 재가를 받아 혁명군 진압을
건의(시도)했으나 민주당 윤보선대통령은 혁명을 인정하고 이를 거절했다. 따라서 군사혁명은 그때부터
불법 쿠테타가 아니고 혁명이 합법적으로 추인된 셈이다(모든 국민이 이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박정희가 당시 봉기(逢起)한 정치철학을 엿볼 수 있는 혁명공약을
지금 이싯점에서도 되돌아 보면서 그 가치와 정당성을 한번 살펴보자!
(당시 정당의 정강정책과는 확연히 다르고 지금도 각 정당공약과는 차별화 된다할 것이다)
1)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第一義)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대 이북이나 국내외의 좌경세력에 대해 강력하게 대처하는 국가 안보강화 의지이다)
2) 유엔헌장을 준수하고 국제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더욱공고히 한다(아마 이 선언으로 인해 5. 16.이 국제적으로도 혁명(정부)로 인정받은 것같다)
3)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도의와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해 청신한
기풍을 진작시킨다(당시 모리배나 깡패 등, 국가사회를 좀먹는 구악들에 철퇴를 내려 사회정화의 의지)
4)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
(우리가 오천년간 너무나 가난하게 살아왔던 가난탈출의 숙원을 이루고 삶(복지)의 질을 높일 의지다)
5) 민족의 숙원인 국토통일을 위해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배양에 집중한다.
(우리국민들께 자립 자조의 힘을 길러 자유민주주의 정체로 통일하겠다는 강열한 의지표명이다)
6)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은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
(지금도 우리의 현실에서는 위 5개의 혁명공약은 절실히 요구되는 우리가 해야할 사명이라 할 수 있다)
그후 유신헌법으로 독재자라고 지칭받고 있지만 박정희 입장에서는 유신도 어느기간까지 혁명과업
수행의 연장선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만 이 유신기간에 혁명공약이 결실을 맺어가는 단계에 이르렀다.
다행한 것은 그가 옳바른 국가관으로 아프리카나 중동의 다른 독재자들 처름 철권통치로 수십년씩
대를 이어가며 집권하는 개인적인 욕심을 내지않았고 <그럴려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도 있었는데>
스스로 내걸은 혁명공약을 모토삼아 "민주화"로 깨끗한 민정이양과 함께 국가재건에 혼신을 다하였다.
박정희의 봉기가 혁명이었던 쿠테타이었던 결과적으로 5. 16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생활방식,
국민성까지 개편하여, 산업화 선진화를 이룩하고 경제부흥과 성장에 시동을 견인하여 우리나라를
단시간에 중진국 선진국으로 발전 바탕을 이룬 인류역사상 거의 딴나라에서는 그 예를 찾아 볼 수 없는
훌륭한 개혁이 혁명적이었으며 또한 정신적 혁명을 동시에 가저 왔다고 할 수 있는 좋은 결실을 맺었다.
<관점에 따라 5. 16은 진정한 선(善)의 혁명적 모델이며 혁명이란 진수를 보여준 혁명이라 하겠다>
예를 들어 영국의 산업혁명, 프랑스의 대혁명, 러시아 공산혁명, 중국의 문화대혁명 등등-
세계 어떤 혁명과 비교해도 꿀릴 것 없고 경쟁력있어, 성공적이고 국민의 자긍심을 높혀준
우리의 자랑서런 위대한 혁명이라고 세계에 스스로 자부해도 부끄러울 것 하나 없는 일이다.
다른나라에서는 우리나라의 성공적 혁명을 칭송하며 부러워해 연구하고 배우고저 힘쓰고 있다.
말하기 좋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손톱밑에 끼어 있는 더러운 때와 세균들은 알지 못하고-
소탐대실(小貪大失)하고 적은 것에 집착하여 그때 당시에 자신들이 집권 여당인데 지금와서
아무리 야당이라고 하지만 또 5. 16.으로 인해 정권을 잃었다 하드라도 계속 말 꼬투리나 잡고
나름데로 5. 16.의 국민적 많은 수혜자들을 폄훼하는 짓거리들은 가슴에 손을 한번 얹고-
당리당략차원을 떠나 국가와 국민된 입장에서 자신들이 어느나라 국민인지 고요히 성찰해 볼 일이다.
물론 5. 16.으로 인해 기존기득권과 구정치인들을 비롯한 그와 관련된 여러사람이 자유를 억압 당하고
인권을 침해받는 불이익을 많이 받은바가 있었겠지만, 혁명(쿠테타)란! ~~~~~~~~~~~~~~~
기존의 모든 규범과 질서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과정에서 개인적 불평은 원래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화산이나 지진이 폭팔하듯 쓰나미가 밀려오는 그러한 천지가 변혁할 일이 발생하지않으면 또한 일정기간
국가나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지 않으면 기존의 기득권에 빠저있는 나태한 부류들에게 지금처름 일일이
발목잡혀- 혁명과업을 원활이 수행하고 공약을 이루어 나가기란 불가능하지 않았겠는가?
역사는 옳바른 대(大)를 위해 소용도리치는 혁명의 물결쏙에선 소(小)에 대한 약간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일로서 감래하라 하고 그러므로 이런 계기에 삶의 가치나 역사가 발전해 간다 할 것이다.
어느기간까지 우리가 다같이 혁명과업수행을 위해 일부 인권 자유 민주 등,고통을 인내하였기 때문에
그 발판으로 당시 우리나라가 세계의 끝자락 위치에서 오늘날 세계 10위권내에 진입할 가능성있는
우리국력이 골고루 배양되었고 우리가 발전성장한 그 힘- 국력의 일부를 보여준 것이-
이번 영국 하계올림픽에서 처음으로 해외원정경기에서 5위라는 역사적 순위가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그 한나라가 삶의 수준과 스포츠는 향상 같이 비례해 발전해간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가 이미 무역도 1조달라를 넘었고 국민소득도 2만불을 넘어 가는 것은 국가가 비교적 균형발전을
해가는 결과이고 모든 산업의 "기초기반"이 힘이 되고 있는 것은 이 모든계기가 5. 16. 혁명의 발전이고
박정희대통령의 혜지(慧知)와 요지부동의 확고한 신념(信念)과 强健한 意志가 바탕이된 훌륭한 영도력
덕분이라는 것을 현재 5. 16에 대한 잛은 역사이지만, 누구도 이의를 달거나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구정치인들의 어느 정부 어느 정권이 이런 혁명적 일을 해낼수 있었나? 오로지 입으로만 혁신하였지!
이때 뿌려젔던 각종 씨앗들이 서서히 자라고 결실을 맺어 그 과일을 지금우리가 수확하고 있지 않은가?
동서고금 역사를 통털어 박정희 스타일과 같은 유형의 평화적인 혁명적(쿠테타)는 일찌기 없었다.
(단시간)에 혁명으로 인해 우리나라와 같이 많은 변혁(變革)과 발전을 이룩하고 혁명이 이렇게
눈부시게 성공한 나라는 아직까지 지구상엔 없다.(동시에 혁명으로 인해 처절한 피도 흘리지 않았고)
우리가 지금 세계열강들과 함께 어깨를 국제사회에서 나란히하며 우리의 주장을 내세울 수 있는 바탕도
스스로 우리가 자력갱생할 힘을 가젔기 때문에 다 여기서부터 힘의 근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반대세력들이 그들 욕심을 충족시키코저 혁명이니, 쿠테타니하고 폄하하면서 난리지만!
그 명칭이나 정의(定義)로 할일 없이 배부른 논쟁을 해야할 때도 아니고 순수하게 이루어진
혁명(革命)적 그 결과의 시작(始作)과 종결(終結)의 본질(本質)을 보고 평가해야 하지않은가?
우리는 군사혁명이후 국위선양과 국민적자긍심으로 놀라운 발전에 모두가 그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한 선각자의 피땀어린 혁명과업을 감사하기는 커녕, 일부로 이를 무시하고 폄하하는 세력들이 많은데
그들은 이 이상의 새로운 국가경영철학과 대안을 내어 놓치도 못하면서 열린 입으로 잘못된 비평과
비난만으로 깍아내리고 누워서 내 나라 제 얼굴에 침밷기만 하고 있으니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누구나 남을 비난하고 비평하는 것은 입만놀리면 되는 일이고 손바닥 뒤집 듯이 얼마나 쉬운일인가?
적은 일 하나라도 실천해가며 성공을 이루어 내기란 정말정말 얼마나 고통서럽고 힘든일이 아닌가!
우리가 현재 국제적 위상과 현실을 볼 때 지금 그런 한가한 논쟁이 하등의 가치있는 주제가 아닐 것이다.
하나 하나의 나무를 세면서 따지고 볼 것이 아니라 산 전체의 숲을 보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박정희는 우리 국민에게 혁명으로서 몸소 실천하기를 <"하면된다는 자신감과 꿈">을 심어주었다.
앞으로 위정자들은 군(軍)이 정당하게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별미를 자초하지 않도록 명심해야 한다.
이미 지난일에 대해 군사독재이었느니 자유민주, 인권탄압이니 등등하면서 당시 자신들의 무능으로
일어난 일임을 망각하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찾을려고 책임을 떠넘겨 반대논리만 내세울 일이 아니라,
5.16.은 자신들이 초래하였고 자신들의 잘못으로 일어난 불행한 사태인만큼 그 역사적 책임을
당시 혁명군(軍)에게만 전가하는 비열한 작태는 구정치인들의 야비한 습성으로 이제는 더이상
그런 철면피한 얼굴을 보이지 말기를 당부하며 5. 16.발생에 대한 원인제공의 책임을 지고 반성도
할 줄 알라! (지금 우리국민의 정치 감각은 하나라카면 이미 둘을 앞서 가, 아는 수준에 와 있다)
엄연히 있었던 이 사실을 반면 거울로 삼아 앞으로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금후 정치는
오직 민생을 위해 똑바로 잘해주기를 촉구하며 그간 정치를 잘해왔다면 그런일은 도저히 발발할 수 없는
일이었지 않은가? 자신들의 잘못을 먼저 성찰하고 그래도 비난할 것이 있다면 정당한 이유를 내세워
비난하라! (자신들의 이해관계에서 오는 사심(私心에 의한 역사적평가는 정치인으로서 삼가하고)
박정희는 혁명공약되로 양심적인 정치인에게 민간정부를 구성해서 정권을 이양코저 했으나
혁명주체가 보기에 당시 양심적이고 믿을만한 능력있는 수권정치인집단이 없었다.
이에 결심하길 본인이 예편후 민간인이 되어 국민들께 혁명과업을 직접심판 받고저 민선 대통령에
출마하였다. 이때 구정치인들은 헌정을 중단시키고 인권과 자유를 탄압하며 독재정치를 하였다고
국민들에게 강력하게 호소하며 (박정희를 대통령에 당선시키면 또다시 군정의 연장선이라고)
열열히 비판하고 자신들을 선택하여 군정연장선을 종식시키자고 호소하고 경선했다.
구정치인의 대표로서 혁명당시 민간 대통령이셨던 민주당 윤보선전대통령과 공정한 양자 대결에서-
약15만6천여표차로 박정희가 윤전대통령을 눌렀고 국민들은 박정희의 혁명을 용서하고 선택하여
민선 대통령에 당선시켰다.(이때 전라도지지표가 박정희를 당선시키는데 결정적인 표를 몰아 주었음)
또 그후 구정치인을 대표한 김대중전대통령과도 양자대결에서 약9만4천600여표차로
국민들은 김대중전대통령을 대신하여 박정희를 선택하고 그 혁명과업을 지지하는 승리를 주셨다.
박정희는 혁명후 선거에 의해 민선(民選) "민주화 정부"를 회복함과 동시 쿠테타적 과도기 혁명과업을
두차레의 국민심판에서 선거로 승인받았고 혁명정부에 대해 국민의 지지를 확인하였으며 군인이 정치에
불법개입한 쿠테타적(혁명)에 대해 국민들로부터 사면으로 인정받아 불법쿠테타이었던 혁명이었던간에-
명칭이야 무엇이던 상관없이 법적이나 역사적으로도 이미 다 인정되고 끝난 일이다.
금세기 우리역사에 군이 정치에 개입했던 그 엄연한 사실을 잊어선 않되고, 우리의 역사가 후대에
교육적 차원에서 원인과 결과를 깨우치는 지침이 되고 정직하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8. 15.해방이후나 전이나 간에 오랜 역사의 기간동안 피죽도 한그릇 제데로 못먹어 오던 우리가!
불과 30여년만에 오늘날 우리 여성들이 세계에서 오직 미모(美貌)를 위해 성형(成形)일등국으로까지
나라의 경제와 각 가정이 눈부시게 발전하게된 이 생활의 여유와 정신적 풍요로움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싹이 텃겠는가? 5. 16. 이전엔 먹고살기 바빠 이런 모든일들은 감히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한
꿈같은 일들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지금 정치인들은 꺼떡하면 죽은 박정희를 무덤에서 다시 꺼내어 부관참시 하듯!!!
독재자니! 쿠테타니 어쩌고 저쩌고 하며 늘 쓰오던 레파트리를 녹음기 돌리고 난도질 하는데!
표좀얻고 대통령이 되어 집권해보겠다는 욕심때문에 폄하하면서 (정권)욕에 눈멀이 멀어,
이미 죽어 흙이 되어 있는 한 인간의 슬픈 운명적 죽음을 산사람들이 사욕(私慾)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정쟁에 이용하는 비인간적이고 비열한 모습을 앞으로 더는 보이지 말기를 바란다.
결론적으로 국가와 민족을 살려낸 좋은 결과라면 쿠테타면 어떻고 혁명이면 또 어때?
옳바르고 공평한 견해를 갖지않은 역사관이 어쩌구쩌쩌구하는 것은 다 부질없는 짖거리이다.
5.16.은 당시 민주당 구정치인들로 인해 침몰할 국가와 국민들을 구국(求國)한 혁명주체들이
(어쩔수 없는 역사적 소명으로 그 단 하나의 길 뿐인 선택이었으며 그때당시 차선의 길은 없었다)
그때의 혁명을 지켜보고 그 혁명체제에서 살았던 국민들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생존해 있으니-
그들로부터 당시 실재살황을 생생한 증언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집권층인 일부 민주당계와 진보좌파의 기성세력들만 빼고 국민모두가 열열히 혁명과 혁명군을
지지 찬양하였고 아낌없는 박수로 환영하고 다시 두번이나 민선대통령으로 선출한 것만 보드라도
누구의 잘잘못인가를 알것이다(당시 구정치인의 대표격인 윤보선 김대중을 낙마시킨 것이 입증한다)
5.16.은 무혈(無血) 쿠테타로 평화롭게 발발하여 우리에게 물질적 정신적 큰 변화와 함께 많은 변혁을
이끓어 내고 국가사회전반이 오천년역사에서 처음으로 발전적인 혁명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어 나라와
우리들 삶에 확고한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지만!
그 주역인 박대통령과 영부인은 피살되어 비명에 가고 일생은 비극으로 끝나 혁명가다운 삶을 마치면서
두분다 동작동에 안치되어 잔디가 무성한 무덤아래 이 나라 이 정치인들을 지금도 지켜보고 계시다.
같은 한 인간으로서 그 비운의 모습은 우리들 가슴에 각인되어 있지만 소중한 생명과 모던 것을
국가와 국민께 다 받치고 간 슬프고도 아름다운 일생이리라!!!
당시 군사혁명이 우리국가와 국민에게 불행을 가저다 준, 군의 불법정치 개입이다.
또 그때 5. 16.이 없었으면 우리가 더 잘할 수 있었다며 주장하는 자들은 주저말고
동작동으로 달려가 서슴없이 박정희를 폄하하면서 국가와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대역죄인이라하고 비석을 세워서 저주하며 그 무덤에 춤을 밷으라!
(참고 : 1961년 10월28일 사뮤엘 버거 주한 미국대사가 국무부에 보고한 아래 電文(전문)은
군사혁명정부에 대한 극찬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5·16 군사혁명이 위로부터의 혁명이라면서
장교들의 의욕을 극찬했다. 버거 대사는 부임전엔 박정희 군사정부에 대해 아주 비판적이었던
사람이었으나 가까이서 지켜본 주체세력 군인들의 혁명적 개혁의지에 감동한 듯하다(전체전문생략)
이번에 대통령 한번 해먹겠다고 경선에 나와 눈에 불을 켜고 입에 침을 튀기고 있는 인간들이나!
뒷전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부채질하면서 호박씨나 까고 전자계산기를 열심히 뚜디리고 있는
정치적 메시아인듯, 또 최고의 신사인척하며 눈치를 굴리고있는 모(謀) 그 어느 사람이던 간에,
모두가 5. 16. 혁명을 폄하하면서 "표좀 덕볼려고 하기 이전에" 한번 더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시대 자신이 박정희의 입장이 돼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그러한 일을 감당하고 결단을 할 수 있는
그런 신념과 용기있는 인물이었겠나?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적으로 한번 성찰해 보길 권하고 싶다.
쿠테타던 혁명이던 잘못되면 군사반란으로 역적의 오명을 쓰고 박정희는 처형되는 길뿐인데!-당신은-
그리고 엄연히 있었던, 5. 16.의 역사적 혁명(쿠테타) 사실을 그때 차라리 없었다면 우리나라가
지금보다도 더잘되어 있을 것이라고 당당한 논리를 내어 놓고 비하하면서 부정하고 마음껏 폄훼하라!!!
하지만 지금 우리는 다시 한번 더 확실한 선진국 도약을 뛰어 넘기 위해 서로의 과거사에 발목잡혀 실효성
없는 논쟁으로 귀한 시간을 허비할 때도아니고 서로를 감싸 앉으며 이해하고 용서와 화합이 절실한 때다.
저는 감히 역사적 사실을 비평할 식견이나 능력이 전연 없는 뭘 잘모르는 소시민입니다만,
이런 시사적 민감한 문제를 저가본 시각과 관점에 따라 저 나름되로 가급적 사실에 기초하여 생각을
기술해 본 것이오니 오해없이 보아주셨으면 하고요, 여러분님의 생각과는 혹, 다른점이 있다해도
너거러우신 이해를 바랍니다.
-남경-
2012.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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