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날 - 순창경찰서에 희한한 사건이
접수되어 세상의 이목을 집중케하는 놀라운
일은 아내가 남편의 그시기를 싹뚝 짤- - -
우리나라도 이젠 다문화 가정을 비롯한 외국인
(상주)거주자가 100만을 돌파하고 있다 하는데
이로 인해 우리 사회에 여러가지 생각지도 못한
이질적인 사건들이 근래 빈번히 일어 나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의 다문화 가정 시작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사실은 발해 건국 당시를 통해서도 알 수 있고
삼국시대를 통해서도 알 수 있으며 고려와 조선은
말할것도 없고 또 말갈족과 같은 유목민들 -
아라비아 상인들, 동남아시아인들, 일본인들,
서양인들, 등~
상당히 많은 수의 외래인들이 한반도 문화에 흡수되어 (또, 그렇치 못한 사람들도) 이 땅에서 터를 잡고
다수 살아 온 것은 역사에서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 조차 홍익인간의 정신을 이어 받아 오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치 못한 사람들도
많치만 결국 같은 민족임을 결정 할 수 있는 가장 큰 근거는 피의 유전적 측면 보다 정신 문화적
측면에서 동질성과 유대감을 공유 할 수 있나를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근세에 와서 제2차세계대전과 6월 25일 共産과 民主간의 理念갈등으로 인한 동족 전쟁 등으로 인해-
우리나라 여성들이 어쩔수 없는 환경과 사정상 性을 파는 여성도 생겨났고 또는 서로간 의기투합하여
결혼을 하던 또는 동거해서 가정을 이루고 정착하여 사는 사람들에게 까지도- - - - - - - - - - - - -
그간, 우리 배달민족의식은 배타적으로 이들 여성에게 좋은 말로는 양공주라 해보고 또는 똥갈보라고
비하하여 야멸차게 인간 인격까지 무시하면서 동족인 여성들을 그들이 그렇게 됀, 사연과 고충을 조금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인간이하로 취급하던 때가 지금이나 옛날이나 다소 있기도 하였다.
이젠 시대의 변천에 따라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으로 앞마당 뒷마당의 장벽이 사라저,
세계인이 어느 곳에서든 정착하여 하나의 가족문화를 이루어 살면서 그 뿌리에서
동질화하여 흐름에 변화하면서 삶이 더불어 발전해 가는 것이 시대적 조류인 것 같다.
이러한 새로운 삶의 형태가 비교적 행복한 삶이 되기 보다는 처음 출발은 다 좋으나 결국엔-
파탄과 불행한 삶으로 사회적 문제가 왕왕되는 수가 점점 많아 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 할 것인데,
일일이 다, 예를 열거 할 수는 없고 가깝게 우리나라에서 지난 설날 사회적문제가 되었던~~~~
순창에서의 한, 다문화가정의 비극을 하나의 모델케이스로 조명하여 같이 한번 생각해주시기 바라면서
당시 경찰에서 사건을 직접 수사한 실재 상황을 말씀 드려 볼까 한다.
그런데 각, 나라의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결혼하는 경우 진실한 모던 정보가 서로 공유되지 않고-
처음부터 이질적인 면에서 출발하면서도 심층있는 解剖(해부)를 하지 못하고 약간의 외견상 조건을
짜집기 하듯 서로 맞추어,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 이해관계로만 얽혀 남녀가 결혼을 하는 과정에~
나이 학력 경력 재산 성격 미모 체형 病歷 종교 가족관계 문화 등등, 가장 중요한 사항을 대체적으로
무시하거나 또는 대충 살피기만하고 보편적 자기의 약점은 상대에게 대부분 쏙이며 자신의 신뢰와
위신을 높히기 위해 과장된 허세 등등, (진실과 사랑없이 결혼 하다보니)
특히 지금 우리나라 농촌 총각들이나 도시의 결혼 대기생들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국내에서,
결혼 짝을 찾기가 그리 만만치 않고 농촌의 홀애비경우는 더더욱 짝구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보니
중국의 조선족과는 서로 말이 잘 통하여 거짖 정보가 쉽지않으니 짝맞추기가 힘이들어 대체로 동남아나 필립빈 몽골 등지에서 결혼상대를 많이 구한다고 보아 진다.
지난 02월 03일(설날) 전북 순창에선 캄보디아 출신 B씨(26세) 부인이 남편 양모씨(52세)
이혼 남의 성기를 짜르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캄보디아의 B여인은 2007년 10월경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한국의 양모씨와 결혼을 하였고-
두사람 사이에서 딸(4세)를 두고 시골에서 생활하며 지극히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온 것 같다.
남편은 이혼 남으로 홀애비로 살다가 젊디 젊은 캄보디아의 이국 여성(당시21세)을 아내로 맞이 하기는
하였으나 재산이나 생활 능력이 전연없었고 "기초생활수급자로서"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얼마대지 않은 생활보조금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처지이었지만 이런 사실을 전연모르고 꿈, 많은 새파란 젊은 나이에
캄보디아에서 먼 이국까지 중 늙은이 한데 시집 올때는 자기나라 자기집 형편보다는 훨씬 좋은 나라와
가정환경에서 살아 갈 부푸른 꿈과 희망을 안고 시집 왔건만-
그 꿈은 한국에 도착하여 신랑의 집에가서부터 산산히 무너젔고 첫, 날밤을 실망한체 날을 새웠다.
고통서럽고 괴로운 밤을 보내면서 눈물과 실망된 원망이 마음 쏙 깊은 곳에
처음부터 女子의 한(恨)이 자리를 꽉, 잡어면서~
남편에게 모던 것이 다, 쏙았다는 분한 마음과 함께 생활고와 더불어 정상적인 생활을 매일매일
한다는 것은 지극히 힘들었고 고달픈 나날이었다.
자연히 불만은 반항이되고 말도 안 통하는 남편은 의례히 술만 먹고 들어 와서는 잘 알아들을 수 없는
폭언과 폭행을 밥먹듯 해되니 매를 맛고도 제대로 말대꾸도 (말을 잘 못하여) 단 한번이라도 자기의
의사를 밝힐 수도 없었고 혼자 의논할 때도 없서 쏙으로 골병이 들어가, 날이 갈 수록 정신 또한 황폐화
해지고 자기의 처지를 호소할 대도 없다보니 자기한데 제일 만만한 것이 지아비의 딸, 즉 양씨와
사이에서 난, 자신의 4세된 어린 딸을 때리고 캄보디아어로 욕하고 부글부글 끓고 있는 마음의 모던
스트레스의, (火)화를 배출구로 삼았다.
남편과 아내 사이가 하루도 편안 한 날이 없고 같이 사는 생활이 바로 지옥이고 매일 싸우는 전쟁터라
남편은 술을 먹고 꺼덕하면 하던되로 아내 때리기를 되풀이하여 아내에게 화풀이를 할 수 있었지만-
아내는 힘이 달려 남편에게 얻어 터짐으로 맞서서 싸울 수도 없고 억압된 많은 욕구는 정신적으로-
이상하게 자신이 변해가 남편으로부터도 돌안 여자로 일방적으로 취급당하고 이웃에서 도움을
청할 방법도 없거니와 (말도 잘 통하지 않아) 왕따를 당하면서 홀로 고독하게 지나다 보니~~~
이웃에서는 자기의 딸아이를 자꾸 때리고 하는 것 만을 보아 왔지 저여자가 왜? 그러나!
한번이라도 그 여자의 입장과 처지를 생각해 보아 주지 않고 외견상 눈에 보이는 대로-
별종(정신이상) 여인으로 만 취급하면서 더구나 (말)이 서로 통하지 않아 소통할 방법도
없었거나와 따라서 아무도 상대 해주지 않았다.
먼~ 나라에 툭 떨어저 와서 남편과 이웃으로부터 멸시와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면서 혼자서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과 가난때문에 우울하다 못해 병적으로 자신과 아이를 학대하며 괴로운
나날을 이젠 눈물도 다 말라 매일매일 지옥에서 사는 것 처름 힘들고 육체와 정신은 끝없시-
우울증에 빠저 하루하루를 죽다 못해 그냥그냥 살아 있는 흉내를 내면서 지나고 있었다.
그날도 설날(2월3일)이라 나들이 갔다 돌아 온 남편은 술이 거나하게 취하여 반기지 않는다고
아내를 또 때리다가, 잠자리를 거부하는 아내를 강제로 자기만족의 성행위를 끝내고 자기 욕심만을
채우고 난 후, 이내 코를 골고 태평하게 자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자기를 쏙이고 결혼하여 남의 나라까지 대리고 와서 호강은 못시켜 주드라도 인간으로서-
가난은 이미 어쩔 수 없다하드라도 최소한의 예의로 인격이라도 존중 해주어야 할터안데 명색이
아내에게 짐승을 대하듯, 한 없는 고통을 주고 늘, 아무렇치도 않은듯 태연하게 술취한 몸으로 편하게
자는 남편을 죽이고 싶도록 싫고 미웠다.
난, 왜? 이리 살아야 하는지 자신이 참으로 한심하다 생각들다가 스스로
불상해저 갑짜기 눈앞에 눈물대신 분노의 불빛이 뻔쩍거려 보이는 것이 없었다.
나이 차이가 배(倍)나 나면서 그래도 어두움쏙 밤에 만 자기를 필요로하여 껴안고 오만가지 희롱을
다하면서 인간이하의 동물적인 애무와 핍박이 연상되자 순간 머리끝의 피가 꺼꾸로 돌아 한마리의
짐승을 잡아야 겠다는 증오심과 강박관념이 자기도 모르게 부억에서 식칼을 가지고 와,
아랫도리를 벗고 술취해 자는 혐오서런 남편의 추한 모습을 보는 순간~~~~~~~~~~~~~~~~!!!
불타오르는 격열한 마음은 자기도 모르게 축 늘어진 남편의 그시기를 왼손으로
꽉, 붇잡고 아무런 생각도 없시 그냥 칼로 사정 없시 싹뚝 짤라 버렸다.
아무리 술취해 자든 몸이지만 갑짜기 강한 아픔의 통증을 느낀 남편의 반사적 본능,방어행동으로
"무딘 부엌 칼이었고" ~~~
남성 성기가 원래, 근육질 뭉치인 관계로 한꺼번에 다 짤리지는 않고 반쯤 짤려 그 것이
대롱대롱 껍질에 붙어 있었다고 한다.
아닌 밤중, 이웃에 사람살리라는 비명 소리에 동네가 난리가 나, 119가 긴급출동하여-
구조함에 따라 출혈은 많았지만 신속한 봉합수술 후, 하마트면 큰일 날뻔하였던 사건이었으나
다행히도 생명엔 지장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여자의 남편 양모씨는 이 일로 인해-
애석하게도 이젠 고 것은 별, 볼 일 없는 불구로 오줌통 역활만 담당하게 됀것 같다.
남편이나 동네 사람들은 캄보디아 여인이 평소에도 의부증 증세가 심하였다고 하며,
이 가련한 여인에게 모던 책임을 다 전가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런 이유 보다도~
더 앞선 근본적인 다른 큰 잇슈의 이유가 더, 많은 결과로 이여인의 인내심을
결국은 무너떠리고 순간적인 발작은 이 끔직한 비극을 불러 온 것 같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왜?
이 여인이 이렇게까지 온 몸으로 말 할 수 밖에 없었던 가를~~~!
그 녀가 처해 있는 恨(한) 많은 처지를 이해해 주거나 그 심정은 아무도 몰라주었다..
남편은 아내를 고발치 않았으나 동네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하여 사건을 담당한 전북순창경찰서-
담당수사관은 캄보디아 통역사를 통해 조사과정에서 가해 동기를 물은 즉, 남편이 그냥 싫었다고
만 말할 뿐, 구체적이고 정확한 상해동기는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 다고 한다.
조사관은 캄보디아의 B씨가 한국에서 4여년간 살았지만 우리말도 못하며 사물에 대한 변별력이 없고
"심한 우울증과 심실상실(心失傷失)상태인" 것 같다고 조사내용을 귀뜸 하였다.
정신감정을 하는 공주치료감호소는 5월까지 예약이 꽉 차있고 다른 병원에서는 통역이 필요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정신감정을 받지 못한체 지난 7일 B씨는 상해 혐의로 구속되었고 남편 양씨는
경찰조사를 받고 있는 아내에 대해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는지 처벌을 원치 않는 다고 밝혔다 한다.
비록 우리법에 의해 구속된 B씨는 그 나름데로 자기 권리의 하고저 하는 자기 방어
말과 주장은 한 없시 맘쏙으로 할 말이 많았겠지만 쏙시원하게 자기 입장의 주장과
자기 변호를 말해 볼, 능력도 없거니와 방법 또한 모를 것이다.
그리고 동네 이웃 사람들이나 캄보디아 국가를 대리한 그 대사(공사)관을 비롯해 어느 누구도-
쏙터지고 말못하는 가련한 이 여인을 위해 단, 한마디의 변호를 위해 나서주는 이 없는,
"힘없는 나라의 국민" "힘없는 친정집"을 가진 여인으로서, 고립 무원이었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 지키주지 못하고 당사자 집안 또한 힘이 없다는 것은 슬픈일이다.
정신과 육체적인 학대로 인한 사건으로 법에서 우울증 정상참작을 할 일인데도 불구하고-
때리면 맞고 욕하면 듣고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고 그저 항거 불능상태에서 성(性) 노예처름
가련하게 당하고만, 비참하게 살아왔으나 종국엔 먼- 이국 땅에서 한을 품고 감옥행 뿐이었다.
그러나 어찌보면 차라리 감옥행이 이 여인에게 안녕을 보장하고 세끼 먹는 걱정 없으며
성의 노리게를 피할 수 있는 마음 편한 보금자리가 아닐른지?
하지만 우리들은 남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가 또 그 나라에 가서 국제결혼에 의한
다문화가정 성립에 대해 한번더 (제도적) 사회적인 여러문제를 이 시점에 재고해 보고
다시 검토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찌되었던간에 다문화가정이 이, 나라 안에서 가정을 유지하고 행복해 질려면 유전적인 혈통이나
DNA 등은 무시하고 우리 문화와 전통, 관습, 법률, 사회규범, 등에서 이를 따라 생활화 하는 질서가-
그들의 이질 이국적인 것이 우리 한국적 문화로 동질화가 되어야만 비로서 한 가정을 이루고 꾸려
갈 수 있을 것이다 할, 것인데- 무엇보다도 생활 능력과 소통이 제일 먼저인 것 같다.
그리고 기왕 결혼을 했다면 바꾸어 말해 제주도 토양의 밀감 씨앗을 이북땅에 심었다면
그 씨앗은 밀감은 되지 못해도 적어도 이북 토양의 탱자는 되어 살아 남아야 그 나름대로
과일 구실(행복)을 하는 것과도 같다 하지 않을까?
다행히도 자발적으로 우리나라의 국적을 취득하여 우리국민 일원으로 귀화하는 사람들은-
한국적 밀감이나 탱자는 스스로 되어지는 사람으로서, 일가창립(一家創立)을하여 우리의 性氏를 가지고
우리 여성과 다문화가정을 이룬다면 이들은 우리와 완전동질화되어 우리가 살아 가는 것 처름 그럭저럭
별탈 없시 그들도 일생을 우리나라 안에서 잘 살아 갈것이라고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저런 일로 국제결혼을 하여 다문화가정을 이루고저 하는 입장의 사람들은~
국제적으로도 근래 빈번한 다문화가정으로 인한 사회적 여러 사건들을 참작하여
미리 대비하고 글로벌 시대에 우리 다 같이 나의 입장에서 내가 다른 나라에가서
다문화 가정을 꾸릴 것도 한번 다시 생각해 봐서,~~~~~~~~~~~~~~~~~~
이 "양"씨 경우 비극은 자신의 분수를 모른체 남을 진심으로 사랑할 줄도 모르고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티끓만큼도 없시 자기 욕심만 채우려다 부른 화(火)인 것 같다.
모름직히 모던 남성들은 항상 3가지 뿌리를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인데-
첫째가 입 뿌리이고- (항상 말, 조심조심)
둘째가 발 뿌리이며- (항상 갈곳 안, 갈곳을 가려서 조심조심)
셋째가 사타리 사이 가운데 뿌리다.
(아무리 염치 없고 눈, 코, 없는 물건이지만 들어 갈곳 들어가지 아니 할 곳을 가려서 삼가하여 조심조심)하면
閉家亡身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 이다.~~~~~~~~~~~~~~~~~~~~~~!
이런 저런 일을 他山之石 삼아 국제결혼에 대해 깊이 자성해 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5대양 6대주의 다문화가정, 잡음 소리가 한꺼번에)
- 남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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