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의 이야기라고 할까?

(73) 내일을 몰라 그렇게 오늘을 열심히 사는가?

단해 2011. 3. 12. 20:42

 

폐암말기라 수술도 할수 없고 잘하면

3개월정도 밖에 못 산다고~~~~~~

당신이 만약 3개월 밖에 못 산다 하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뭣일까? 

 

국상은 꿈결에서 언듯 본 엄마의 환영이 말씀하시든

것이 귓전에 여운이 남아 있지만 - - - - - - - - -

"이승은 다 헛것이고 그림자 이다"

그러니 니가 그 그림자를 붙잡고저 그렇게 목슴을

걸고 안달 할것 없데이 하셨으나, 산, 인간이 송장이

아닌바에야 어떻게 산 사람으로서 그게 그렇게

마음되로 되는 일인가?

어디두고 봐라 이를 악물고-

우선은 어이하던 일단은 성공하고 봐야 한다는

一念뿐인 것이 살아있는 사람들 마음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 하드라도 "산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은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야만 한다"

엄마의 이승에 대한 마지막 말씀에 더 무게를 두고 어떻게 하던지간에 다시 재기해 보려고

발버둥을 처 보는데-

그것이 비록 그림자일지는 몰라도 붙잡을 수만 있다면 붙들고 널어저 볼 일 이다. 

 

국내에서는 이미 소문이 날대로 다, 나버렸고 양날개가 다, 뚝 짤린체 온 몸에 털마저 다,뽑펴

맥을 못추고 이미 황천길을 바라보는 다, 늙어버린 힘겨운 독수리가 되어~ ~ ~ ~ ~ ~ ~ ~ ~  

잃어버린 신용으로 인해 어디에 가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진실한 깊은 대화가 이루어질 곳이 없었다.

 

국상이가 힘이 있을 때 쓸개나 간이라도 빼어 줄듯 한 인간관계를 가졌던 사람이나 거래처 사람들도

안면에 철판을 쓰고 외면하며 무시하기가 예사라 도저히 국내에서는 자기가 다시 구상하고 있는

"음식물 쓰레기처리기기"의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를 채택해서 처리 할 방도가 없었다.

 

현재 국내에 개발되어 시장에 나와 있는 몇몇 제품들은 쓰레기처리기라기 보다는 음식물 건조기에

불과한 것으로 디자인들만 미끔하고 돈만 비싸지 한가지도 실용성이 없는 비경제적인 실패작들이다.

수요는 아파트 단독가구 빌라 대형구내식당 일반식당 군납, 해외 수출용 등, 시장은 무궁무진한데-

안타깝게도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신뢰성 있는 개발제품은 아직까지 불모지에 가깝다.

국상은 이 분야에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그 구상을 개발하여 상품화하고 기업화 해보기란 - 

자신을 둘러 싸고 있는 벽이 너무나 높음을 절감하며 국내에서는 이를 개발하여 사업화 해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판단을 하었다.

 

아무도 자기의 현재 입장과 허물을 세세하게 잘모르는 쪽 중국쪽으로 방향을 돌려 젖먹던 힘까지

다, 동원하고 술과 친구는 오래 될 수록 좋다고 하였던가!

부랄친구 상철이가 물린 돈도 있는데 국상이의 기술적 실력과 인간성을 믿고 잘알기 때문에 국상이의 재기를 위해

약간의 자금을 마련하여 동방항공을 이용해 상해로 날라가-

소개 받은 정밀기계공장의 사장과 만나 구체적인 협의 끝에 개발계약을 드디어 맺었다.

한국의 상해주재영사관에서 게약공증을 받아 개발을 중국팀에 일단마끼고 기술지도는 국상이가

협조해 주기로하면서 귀국하려는 전날밤 중국의 개발공장측에서 상해의 밤야경과 난징로의

여러곳을 안내해 주었다.

저녁 회식은 딸라를 벌기 위해 이북에서 와 상해에서 관광 한식당을 경영하는 이북식당에서

이북 여성들이 공연하는 것을 관람하면서 함께 회식을 끝내고~~~

지금 우리도 딱한 처지에서 최후의 발악으로 상해를 찾았지만 이 여성 동무들은 김정일한데 얼마나 시달려 상해까지- 

그들이 돌아가고 난 후  가까이에 있는 호텔쪽으로 상철이와 함께 둘이 거닐면서 국상은 새로운 희망과

재기 욕구에 불타는 정열을 보이며 여러 감회가 마음쏙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 처왔다." 꼭 성공해야지" 

 

상해의 야경을 바라보고 남경로의 휘황찬란한 불빛아래 많은 중국사람들과 썩겨있는 외국인들도-

어디를 향해 그리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지 어느나라 어느도시던 인생이 산다는 것이 다, 저런 모양세 인데,-

지금의 나, 또한 그들과 다를 바 없고 "생의 끈질긴 마지막 끈을 잡을려고 여기까지 왔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개발제품은 여러 시행착오를 껵기 마련이고 개발기간이 많이 걸리며

많은 시간과 금전과 노력을 투입해서 성공하면 다행이고 실패하면 시간과 돈과 노력이 또 다시

다, 물거품이되고마는 가장 큰 위험이 내포되고 있는 것이 새로운 개발상품의 특징이며 물론 제품이

기획되로 잘 개발되어 성공한다면 대박도 잡고 일정기간 시장에서 독점적 사업권을 영위할 수 있는 

이점도 많이 있긴 하다. 

 

국상은 중국측에 개발의뢰한 구상제품이 마음은 급한데 빨리 개발이 잘안되어 안타까웠고- 

이는 아마 중국측의 기술적인 문제와 중국인들의 기질적 문제가 복합적인 "쇼쇼만만디"(세월아 내월아, 급할것 없다)는

식으로 그들의 국민성은 답답할 정도로 느긋하여 우리와 반대로 빨리빨리와는 거리가 멀어 곯치가 아픈데 개발이 빨리

되기를 기다리는 국상은 초조하고 숨막혀 죽을 것만 같은 애타는 심정이었다. 

 

국상은 요 근래와서 기침과 가래가 부쩍많이 나오며 몸이 늘, 나른하고 컨디션이 계속 좋치 않은 느낌이라

아마 담배를 많이 피우고 그간 모진 시련을 많이 격어서 피곤하고 지처서 그런가 보다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입 맛도 딱 떨어저 밥 맛이 없고 몸전체가 짜증날 정도로 나른해지기가 일수이다.

 

국상이의 큰놈도 지방에 취직하여 떠나고 혼자서 세끼식사하는 것은 아주 불규칙하며 돈이 있어서,

매일 좋은 식당에가서 밥을 사먹을 처지도 못되고 그렇타고 집에서 쭈걸서럽게 매일매일 빠짐없시

스스로의 식사 준비를 한다는 것도 아무런 준비 되어 있는 것이 없서 용이한 일이 아니다.

이럴때 마다 본 마누라 생각이 절로 나고 도망간 엄마담을 찾아 가랭이를 찢어 죽이고 싶다.

직접 끼니와 생활등, 삶림을  손수해보니 아내의 그간 고생과 힘들었음을 이제야 좀 알 것만 같은데-

"집안 살림 살이란 것이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아무리 일해 본들 일해 논 표가 나질 않는다"

 

살아 있었을 때 아내한데 사업핑계로 소흘했음이 후회되고 미안한데 좀더 잘해줄 걸, 후회하고 후회된다.

지금와서 홀로 아무리 땅을 치고 뒤늦게 반성해 본들 다, 부질없는 짖이지만,

마땅히 모든 남편들은 평소에 아내에 대한 고마움도 알고 그 감사함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하며-

아내가 살아 있을 때 정말정말 잘해줘야 한다는 것을 뼈쏙 깊이 느끼고 세상의 남편들에게도 알리고 싶다.

 

국상은 식사를 그의 불규칙하게 시간되는데로 대충대충 주로 인스탄트식으로 라면이나 빵같은 것과

우유등으로 그의 때울때가 많지만 하루에 그의 한두끼는 꿂는 날이 더 많은 생활이 계속되었고 몸에

필요한 최소한의 영양공급이 지대로 잘되지 않은 일이 오래지속되어 와, 몸에 저항력이 없서저~~~

일상생활에서 본인도 모르게 몸은 점점 더 곯병이 들어 갔고 견디기도 점점 힘들어 저 갔다. 

국상이의 부인이 만일 살아 있었다면 이런 일은 꿈도 못꿀 일이고 국상이의 사업도-

아마 실패가 없었을 것이며 지금 처름 잘 먹지 못하여 쇄약 할 때로 쇠약하게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의 부인이 일찍 타계한 것이 국상이 사업 실패원인의 근본 되었고 안타깝지만

이 모던 일은 국상이가 타고난 운명이고 팔자이니 어찌하랴!

그러나 부부간에 살다가 죽음이 찾아 온다면 남편이 아내보다도 먼저 돌아갈 수 있다면

이는 지극히 바람직한 죽음의 순서이고 아내를 바라보면서 남편이 아내보다 먼저 간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고 행복한 죽음이랴!

남자로 태어난 사람들에겐 지극히 바람직한 죽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내가 먼저 가고 나이 들어 홀애비로 쓸쓸히 홀로 살아 간다는 것은 남자는 결국 비참한 일이니 - 

어찌다가 가끔 딸애들이나 누이동생들이 간간이 들려 집안일을 거들어 주고 간다고 하지만 각자의

생활에 살기도 빠쁘고 힘더니 오빠만 잘 챙겨줄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상철이가 서울에서 부산에 있는 국상이와는 일주일에 한두번은 거의 전화를 하고 국상이도

상철이 한데 전화를 자주하여 중국에서의 개발사업에 관한 의논과 또 꽉, 숨통이 막혀 있는

자기 주변의 소식 등, 정보를 늘, 서로 주고 받고는 하고 있었다.

서울과 부산간의 거리라 서로 자주 많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내가 다른 일로 해외에 다녀올일이 있어서

볼일을 보고 한 20일후에 돌아와 국상이한데 전화를 해보니 신호는 가는데 통, 전화를 받질 않아~

갑짜기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혹, 전화를 못 받을 일이라도 있나? 의구심이 들기도 한데,

 

다음날 다시 전활해도 받지 않아 불안한 생각이들어 윤학이한테 전화해서 국상이의 집에 좀, 가보라

전화를 통, 안받어니 내 전화를 기다릴텐데 (내가 밖에 나갔다 돌아 올때가 됐다고 알고 있을 터인데)

윤학이가 국상이의 집에 가보니 국상이는 아파서 혼자 누어 있으면서 벼개머리에 전화를 두고도

전화벨이 울리지만 전화 받을 힘과 말할 힘이 없서서 전화를 일체 받지 않고 마냥 누어 있기만 하드라고?  

나에게 윤학이가 전화를 했는데 그럼 그러지 말고 자네가 우선 병원에 좀 대려가보고 나도

부산으로 내려가마, 병원에 간 것을 내게 연락주라고 하면서- 

 

국상이의 큰 아들놈도 아버지한테 전화를 계속해본 모양인데 연락이 딱, 끊켜 안되니 직장에

양해를 구하고 부랴부랴 집에와 아버지 아픈 것을 보고 바로 부산대학병원에 모시고 가는 것을

윤학이가 직접 보고 왔다고 전화로 내게 알려 왔는데-

누구이던 혹시 년노한 부모님이 홀로되어 떨어저 혼자 사신다면 모름직히 자식된 자들은

어른들의 밤새 안녕하십니까?를 매일 점검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준명(국상이의 장남)이 한데 내게 전화오기를 아버님이 폐암말기라 수술도 불가능하고

잘사시면 3개월정도 일 것이라, 병원에 입원해도 별도움이 되지 않으니 곧바로 퇴원하여

본인이 먹고 싶다는것, 하고 싶다는 것, 등등을 알어서 해주시라 하며 바로 퇴원하라고

하니 어찌 해야 할찌 기가차 죽을 지경이라고 준명이가 내게 말하며 - - - - - - - 

아버님의 병을 아버님께 말해드려야 할찌? 어떻게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하여,

일단은 병세를 알리지 말고 동네 다른 병원에 모시고 가서 간호사 등 입단속 잘시키고  치료는

방법이 없다 하니 영양제나 주사하고 통증이오면 진통제 등, 계속 병원에서 알아서 놔드리라고 하며

입맛이나 찾을 수 있도록 해주라카고 내가 곧 부산내려가마 -

전화를 끊었는데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안정을 내가 찾을 수 없었다.

 

폐암 말기라 수술도 할 수 없고 잘하면 3개월정도 산다고???

참,-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은 소리로 건강관리를 평소에 국상이는 다른 사람들 보다는 늘 관심있게-

잘하는 편이었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일이지? - 물론 담배는 지나친 골초 이었지만,그 근골질 큰 체격에

혼자 있다 보니 모던 식사를 대충대충 라면 등으로 때워 원기 또한 없었고 저항력이 쇄진했을 것이다.

 

폐암은 병세가 상당히 깊어 질때까지 증세가 그의 없고 기침과 가래가 나오는 정도라, - - - - -

담배피우는 사람들은 평소에 기침과 가래가 나오고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쉽고 가슴에

이따끔씩 통증이 있고 피가 가래에 썩겨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증세는 일반 호흡기에도

흔이 있는 증세이라 폐암의 특징이라고는 볼 수 없는데 ~

그외 잘 낫지 않고 반복되는 폐렴이나 기관지염이 폐암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은 많치만 이런 증상이

있는 경우 페암을 염두에 두고 흉부방사선찰영을 꼭 해볼 필요가 있고 감기증상도 2주이상계속되면서

장기간 목이 쉬면 진단을 받아 가급적 초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하고 체중감소나 호흡곤난도

유의해야한다.

페암발생원인은 현재까지 확실히 규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치명적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병임으로

"무조건 담배는 안피우는 것이 예방의 첫 걸음이다"

 

국상이를 부산병원에서 만나보니 그간 보지 못한 2개월사이 사람의 꼻이 말이 아니게 변했다. 

그, 장대한 체격에 살이 다 빠지고 뼈만 남아 쇄약할 때로 쇄약하게 보이는데 쏙에 큰병든줄 모르고,

오로지 재기를 위해 개발품에 신경만 쓰면서 자기 죽는 줄도 모르고 잘 먹지도 못하며-

오로지 성공을 위한 일만 생각하고 앞도 뒤도 살필 여유 없시 그기에 미처서 있다 보니 지 죽어 가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간 영양제 주사와 죽,등의 영양식을 공급 받아서인지 나를 바라보는 국상이의 눈엔 반가움에

약간의 생기가 조금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지금은 병상에 겨우 앉을 수 있고 호흡이 곤란해-  

산소호흡기를 코에 차고 있으면서도 개발을 위해 중국 상해에 같이 갔던이야기이며 개발일에 대한

걱정 등을 하면서 곧 쾌차하여 빨리 일을 완결 짖기 위해 또 다녀 오자는데~ ~ ~ ~ ~ ~ ~ ~ ~ ~ 

이사람아!

니가 빨리 회복되야, 다시 중국엘 가서 개발이고 뭐고 간에 책크해 볼 것 아이가, 하며-

생에 강열한 애착을 갖도록 힘을 주면서 말머리를 옛날 추억담으로 다시 돌리고 이런저런 말쏙에

어떤기억이 낫는지! ~~~

국상이의 눈엔 이슬이 가만히 맺이는 것을 바라 볼 때 내가 어찌나 가슴이 매어지고 아프던지,

그 눈물을 서로 마주보며 내가 딱아 주고 싶었으나 곧 내 눈물보가 터질것 같아~   

자리를 급히피해 잠깐 병실 문밖에 나가 주체 할 수 없시 흐르는 눈물을 울고 또 울었지만

가슴에 콱 막혀 있는 그 무엇인가가, 답답한 쏙이 가시질 않는다.

 

자기가 곧 죽게 된다는 사실을 모르며 내일 일을 걱정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앉아 있는 저친구를,  

이제 3개월쯤이면 영원히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아무리 참으려해도 나오려는 눈물은 막을 길이 없었다.

큰 아들이 잠깐 병원 사무실에 간틈에 나에게 절마들이 대학병원에 있지 않고 나를 와 - 이쪼그마한

병원에 처밖아 놓체- 그냥 대학병원에 있으면 여기 보다는 더 치료를 잘할텐데 한다.

그게 아이다 야!

큰병이 아니니 대학병원에 있을 필요가 없고 동네 병원에서 조용히 영양제나 맞으면서 정양이나 하는

셈으로 니를 위해서 그러겠지- - - - - - - - - - - - - - - - - - - - - - -  

대학 병원에 있어도 여기와 마찮가지로 뭐, 영양제 밖에 더주나, 걱정마레이,

니 곧 털고 마, - 일어 날 것 아이가!

그래야 다시 상해도 가고 우리가 벌려논 일을 니손으로 매듭지워야지 안그래?

국상이에게 사실을 숨기고 위로하는 나는 나의 목소리가 내 귀에까지 떨리는 소리로 들려 온다.

아침에 도착해 그럭저럭 저녁무렵까지 있다가 기차표시간이 되어서 야, 국상아 내 기차시간이 되어

일단은 오늘 올라 가볼란다. 봐 가면서 또 바로 곧 내 내려오꾸마-

바싹 말라 뼈마 남은 동무 손을 잡을 때 나는 다시 못 볼 것 같은 마음에 얼마나 가슴이 쓰라렷는지!

금방 또 눈물 보가 터질 것 같아 얼른 고개를 돌리고 손을 흔들며 병실 문을 밖차고 급히 나왔다.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남들이 보거나 말거나 손수건이 험뻑 젖도록 눈물을 닦아내고- 

한숨을 쉬어본들, "내가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이, 무능함이 안타까워 미칠것만" 같았다.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마음은 안타깝고 슬픔이 가득찬 채 그래도 무심한 KTX는 지 갈길로 달리기만 한다.

 

차내에서 소주한병을 사서 한잔을 우선 쭈~욱 드리키면서 숨통을 좀 티어보고 쏙을 진정시켜보려는데 -

차창밖은 깜깜한 밤이어서 이따끔씩 인가의 불빛이 차장에 스치고 하늘엔 구름이 가리운지 별 빛하나

찾으려해도 보이질 않는다.

구름 사이 맥이 다 끄질듯한 초생달이 그것도 구름에 가리워 꼭지만 빛을 힘겹게 내어 품고~

국상이의 다 끄저가는 생명의 희미한 그늘에 그 얼굴 모습이 달 빛 뒤로 숨어 들어 가는 것만

같기도 하다. 

실낱 같은 빛을 내눈에 꺼질 듯이 깜밖이며 넣어 주건만 바람소리에 갸날픈

빛 마저 어디론가 날라가~~~~~~~~~~~~~~~~~~~~~~~~~~~~~~~!

 

슬퍼고 고통서런 이 맘을 다 어이하랴!

그래도 아침이 오지 않을 만큼 긴 밤은 없다.

                                                                                                                           - 남경 -

 

                                                             엄마의 굴레 73쪽 중에서

                                                            (엄마의 굴레 74쪽→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