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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엄마의 굴레

단해 2009. 12. 24. 16:18

 

개중에 어떤사람은 야, 일마야 내가 통시(화장실)에 좀 갈려하니

미리 청소 깨끗시하고 바로 나한데~ ~ ~

 

국상이는 엄마가 강력하게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학교는 영도에 있는 야간에

등록하고 한 3키로 떨어저 있는 대평동 부두가에 있는 대한전기제작소에

견습공이 못되는 미나라이(사환)로 다행히 취직을 하게 되었다.

 

여차장들이 오라잇하고 다니는 뻐스는 탈 형편이아니고 그저 십일번자가용으로

출퇴근할수 밖에 없었는데,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직장을 구해서 어린나이에 일을 한다고 하나 일이란것이

하는 일 표나지 않고 가장 흐드레의 힘만들고 구즌 일 뿐이다. 

 

공장안서 쇠부치 따위를 깍음으로 굉음과 쇳가루는 항상 공장안에서 날리고  

전선에 붙어 있다 흩터진 피복껍질등 청소할것이 산더미이며 여기저기

널려있는 연장들을 챙겨서 제자리에 갔다 놓아 두면 또 누가 써고는 아무데나

버려두니 뒤 따라 다니며 치우는 일만 해도 할 일이 끝이 없다.

 

일하러 나오는 공원들중에는 좋은 분들도 많치만 개중에는 성격이 꾀팍하고

나쁜 심뽀를 지닌 사람들도 많아서 일부러 괴롭피기 위해 시키지 않을 일도

시키고 당시의 가정이나 공장등, 화장실이란게 경상도에선 통시라고 불렀는데

대충 씨멘트로 내부를 바르고 위에 판자를 두조각 나누어 놓아 그 판자 위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큰 일을 보게 되는데

 

비가 온 날이면 통시에 물이고여 똥은 물위의 배가되어 둥둥 떠다니고 볼일볼

사람은 자기 똥이 통시에 떨어지면서 똥물위 똥이 빠지며 튀니까 일보는 사람은

제자리에서 앉았다 섰다 하여야 몸에나 옷에 똥, 오줌물이 튀지 않게끔 하고저

운동아닌 운동을 필수로 해야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웃지 못할 기똥찬 모습들이다.

 

 깨끗히 통시를 유지하자면 소변도 큰판자 위에서 보아야하나 다들 귀 찮아서

판자위엔 올라가지 않고 그저 판자 아래서 바지 춤에서 중앙청을 끄내어 밑에서

오줌을 갈겨데니 온 전신에 오줌이 바닥에 흩터저 통시 근처에는 언제나 발 밑이

근적근적하고 구석에 있는 통시는 통풍도 잘 안되니 냄세가 코를 찌르는데

근처에도 가기 싫어나 어쩔수 없는 일이다. 

 

개중에 어떤사람은 야, 일마야 내가 통시에 좀 갈려하니 미리 청소 깨끗시하고

바로 나한데 알려달라 하곤, 시킨데로 해 두지 않했다가는 혼나는 것은 물론이지만

잘 못하면 좆겨나가야 하니 그저 시키는 일은 정당한 업무이던 부정당한 업무이던

이유조건 관계없시 무조건 두말없시 복종하여 해두어야 하는데

 

또 점심시간이 다되가면 큰 주전자에 물을 가득 채우고 미리 점심물을

난로 위에 끓여 놓아야하고 남들이 점심을 먹을 때는 일부러 멀리 떨어저

아무도 보지 못하는 구석진데가서 싸가지고 온 고구마 2개를 점심대용으로

허겁지겁먹고(배가 고프면 무엇이던 다 맛이 있고 사람은 못 먹을 것이 없다)

 

근래 사람들은 때가 되면 먹을 것 이 없다는 둥 항상 뭘 먹지 하는 태도는

고생을 해보지 않은 사치일 뿐이며 혹독한 고난을 당해봐야 인생을 알고 모던걸

감사할줄 알게 되며 입으로 들어 가는 음식은 무조건 고마움을 알아야 할것인데

 

국상은 공원들의 점심시중을 또 들어야 하고 물가저오라, 이 그릇 좀치우라, 

여기 흘린것 깨끗히 딱아라, 시키는 일은 공장일 외에도 사적인 일까지 이것저것 

끝도 한도 없다. 그러나 어쩌랴 시키는되로 무조건 따라야지 -

 

남들은 다 퇴근하고 난후라도 내일 일 준비를 위해 공장내부의 청소를 깨끗히

하면서 흩터진 도구들을 제자리에 다시정리하고 혹 도둑이 들까 불이라도 날까

모든면에 신경을 쓰고 뒷처리를 하고나면 밤 9시경 다되어야 언제나 퇴근할수가

있었고 월급에 비해 일거리와 책임질 일이 너무나 많았다. 

 

아침은 남보다 한시간 일찍 6시경까지 와서 일할 준비를 해두어야 하니

14살 어린나이에 무척 힘던 일이었으나 그래도 국상은 체격이 남달리크고

나이에 딴 애들보다는 힘도 무척센 통뼈형인데 엄마가 열심히 남의 집

일을 하고 국상이도 열심히 엄말거덜어 일해야만 동생들을 주간에 학교엘

보낼수도 있고 자신도 야간 학교에 다닐수가 있다.

 

직장생활이 처음이고 아직 시간 조정을 잘 배정 받지 못해 야간 학교에는

항상 지각이지만 마음 좋고 사정을 잘 혜아려주는 선생님은 언제나 국상이를

격려해주시니 배고프고 지치고 해도 학교에 가는 것은 큰 기쁨이고 희망이다.

 

들여오는 전선소식은 우리군대는 낙동강 최남단을 최후 배수진으로 하여 필사의 항전을

계속하고 있고 교전상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북쪽군의 남한정복이

코앞에 시간문제로 그의 다가왔고 대한민국의 소멸이 절망적인 전황이며

대한민국의 영토는 북이 다 점령하고 남은건 낙동강하류 근처의 몇줌안되는 땅에

2천여만명의 국민들이 국가의 존망에 따른 운명을 조바심으로 지켜보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풍전 앞에 등불신세일때 당시의 미 사령관 워커장군은 낙동강 전선에서

워커라인을 만들고 더 물러 설곳도 없고 물러서서도 안되며 맥아더의

증원군이 올때까지 북이 먼저 낙동강전선을 함락시키느냐, 아니면 먼저 아군이

맥아더의 증원군이 올때까지 사수하느냐의 중대한 기로에 있었고

 

이  찰라적 공간에서의 시간벌기싸움은 나라의 운명을 바꿀 중요한 순간으로 

워커장군은 예하에 전선을 "죽음으로 지키라"(Stand or Die)고 강력히

현장에서 지휘하며 모든 장병이 장군과 한마음 한 뜻으로 죽을 각오로 싸워서,  

 

끝내 낙동강의 워커라인을 지켜 냄으로서 후일 맥아더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할수 있도록 전세를 뒤집을 발판을 워커장군이 만들어 놓았고

 

본인은 전선시찰중 교통사고로 이 전선 이 나라에서 죽으면서까지 낙동강 주변에

조금 남아 있었던 대한민국의 전영토를 지켜주고 애석하게도 본인은 산화할뿐,

 

최후의 보루에서 우리나라와 우리국민을 지켜주신 위대한 군인이며 우리에겐

크나큰 은인이심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 이다.

 

만일 이 전선을 워커장군이 지키지 못하였다면 인천상륙작전같은 것은 물론

할수없었고 그러한 작전은 꿈도 꿀수 없었으며 지금의 대한민국은 패망하여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없서며 이 나라는 현재 김정일이가 다스리는

인민공화국이 되어있을 것이다.

 

부산은 원래 일본놈들이 당시 최대약 30여만명 살수있는 도시로 계획

설계하였다고 하나 북에 있던 사람들이나 38선쪽 이남에 있던 사람들이나 

다 살길을 찾아 남으로 남으로 피난을 오다 보니 이젠 더 피난갈데가 없고

더 밀려 도망간다면 바다에 빠저 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고 부산은

그야말로 피난민의 북세통에 땅 바닥 어디에도 발 디딜 곳도 없는 콩나물

시루가 안될수 없는 나라 꼴이었다. 

 

부산까지 피난민들이 400-800백만명정도 그 비좁은 땅에 몰려왔으니

여긴 또 세로운 전쟁터를 방불케하여 사람들이 절망속에서 서로 부디치고

악에 받처 고달프게 살아갈뿐인데 피난민이나 본토 백이나 별반 차 없시

전쟁통에 힘들게 사는 것은 다 마찮가이다.

 

이북에서 피난 온 사람들은 그간 이 남에서 살던 사람들보다는 더 생활력이

강하여 살아 남기 위해 별라별 일거리를 다 만들어서 세로운 직업종이

부지기수로 창출되었고 아마 지금 그때 그 정신으로 산다면 청년실업이 어떻고

일자리가 어쩌고 하면서 무직인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성 싶은데 ~ ~ ~ ! 

 

딱치는데로 입에 밥만 넣고 잠자리만 있다면 만사 오케이지 지금처름 일자리를

골라가려는 것은 꿈에도 상상 못할 일이고 사치가 도를 넘어 죄 받을 생각이다.

 

토박이 부산 사람들끼리는 혹 여담할 여유가 있을때 만일 일본놈들이

부산부터 처들어와 우리가 이북으로 피난을 다시 간다면 - - - 

 

그 생활력 빼끼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이북사람들 속에서 우리 이남 사람들이

과연 그기로 피난가서 살아 남아 있을수가  있었을까?

 

하는 농담아닌 농진반의 소리를 이북피난민들을 볼때 그런 소릴하곤 햇는데

피난중의 그들 생활력을 남한 동포들이 높이 평가 하였다.

 

사람들이 발 디딜틈 없는 복잡한 부산자갈치 뱃머리에서 한 오륙십되었을까?

하는 왠 여인이 머리는 산발을 하고 신발은 어디다 팽겨첬는지 그래도 몸에

옷가지라도 약간 걸처저 있는 것이 보는 사람에겐 천만다행이라할까?

 

하나 뿐인인 외 아들과 남편을 전쟁통에 빨갱이들이 다 죽였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이젠 나도 혼자서 다 살았네하고 미친 듯이 땅을 치며 통곡을 하고

발버둥을 치는데 그런다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 돌아 올까 만은 안 미치고서야

어떻게 견디랴?

 

그리고 그 여인네와 같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어야 관심이나 가저보지

죽고 생이별한 것이 나라 전체의 사람들이 다  그런걸 어떻해 ~ ~ ~ !

 

이땐 나라나 국민들이나 하루도 편안한 날 없시 전쟁속에서 암울하게 살며

죽다 못해 어거지로 견디는데 만 백성을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괴롭히는

이 죄를 과연 누가 다 받아야만 하겠는가?

 

이나라 강토가 다 파괴되고 산천을 피로 물들게 하며 남의 나라 귀한 집

자식까지 데리고와서 다 잡아 먹고 우리동포들을 생이별과 죽음으로 몰아,

 

약 300백만 인간을 죽게한 김일성(정일)인가, 모택동인가, 스탈린인가, - - - 

 

과연 어느 잡놈이던 지금쯤은 염라대왕님의 심판을 받고 지옥 불에서

지렁이 처름 꿈틀거리면서 꾸이가되서 - 희안에 차 있을까?

- 계속 - 

 

우리의조국이란 우리의 마음이 묶여 있는 곳이다

- 볼데르 "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