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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갈등

단해 2010. 8. 11. 06:20

 

 

 [갈등葛藤]

 

 

인수할 그땐, 모던 좋았던 일이 밤새안녕하십니까,~ ~ ~ ?! 

 

나이트클럽의 사업은 화약에 불을 붙인듯 아주 잘나가고 있는데~

지금이나 당시도 젊은 남녀들은 취직하기가 힘들어 어떤 일자리라도

있다면야 무슨일이라도 사양치 않을 사회적배경이라 대학을 나온지 오래된

여성이나 갖나온 신참들도 좀 잘빠진 여성들은 나이트클럽이 팊이나 기타

돈벌이가 잘된다고 소문은 나있는 터라 너도 나도 취직을해볼려고 멤버한데

돈, 육체적대쉬 등, 취직을 위해 갖은 술수를 다 쓰서서 접근하기도하고-

이중에는 우리나라에 와있는 잘빠진 외국여성들도 간간히 석혀있었다.

 

전쟁후 성인들에게는 공식적인 사교장이고 엔죠이라도 할수 있는 곳이,

마땅한 곳이 없었는데 통행금지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즐길수

있었던곳이 당시엔 나이트클럽뿐이었다.

경제적 사정으로 웬만한 사람은 출입을 못하고 주로 상류층이었다. 

 

어느날 클럽안에서 사장 오봉이에게 접근하여 갖은 호의를 다 베풀며-

아낌없는 서비스를 해오던 빤빤한 미쓰 안이라는 25세남짖한 아가씨가

오봉이 앞에서 항상 기회를 보아가며 날잡아 잡수어 주세요하듯 아양을

떨고 있으니 가만이 있을 사내가 어디에 있으랴!

생긴 것도 잘빠저서 도도하고 누구나 군침을 삶킬만한 쭉쭉빵빵인데~  

 

오봉과 그 미스 안은 이렇게하여 인연이 시작되어 오봉이는

젊고 생기발랄하며 입안에 혀처름 싹싹한 미스 안에게 점점 빠저들어가

미스 안이 임신을하게 됨으로서 당시는 지금처름 낙태도 어려웠지만,

미스 안은 애기놓기를 강력히 주장해 오봉이는 미스 안에게 거처할수 있는

집을 하나 장만해주고 동거생활에 들어 갔다.

본집에서 눈이 빠저라 기다리는 애 엄마는 까마득한 먼나라 사람이되어 ~  

 

오봉인 세상에 태어나 여성으로 인해 사는 맛이 즐겁고 행복함을

처음 강력하게 느끼고 처가(미스 안 본가)가 충청도보령인데

클럽 쉬는 날만 되면 미스 안과 더불어 처가에 가면 사위가 왔다하여

시골 집이 왁짝지글하게 잔치상이 벌어지고

이곳 친지들과 거나하게 취하여 기분 좋은날 밤엔~ ~ ~ 

미스 안이 천당과 지옥을 아슬아슬하게 밤 육체적 운전을 잘해주어

오봉은 10년이하의 발랄한 년하에게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다.

 

이런 날이 게속되어 오봉이의 세상은 태양이 이글거리는 멋진 나날들이나,

원신어멈의 날은 캄캄한 밤중으로 태양이 없는 괴로운 나날들만 게속되어 갔고

오봉이는 자기만의 세상에서 아내나 원신이는 저 먼 세게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는 행복한 날만을 보내고 있었으니~

 

장차 아내의 "한"에서린 원망과 그 "벌"을 어이 다 감당할것인지?

이런 곯치 아픈 문제를 오봉의 쾌락은 생각할 여유가 없는데~

미스 안과의 사이에서는 딸 아이가 하나 생겼고 이 딸 아이의

이름을 승아라고 지었다.

 

오봉인 이제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둔 아버지가 되었지만 ~

영애(원신엄마)가정엔 충실한 편이 전연 되지 못하였고 

승아 가정(미스 안)엔 아주 충실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1967년 12월경 어느날 같이 동업하던 사장이 자기는 나이트클럽에서

손을 뛸터이니 자기의 지분을 인수하여 혼자서 독립해 사업을 하라고

권하니 사업은 정말 잘 돼겠다 프레미엄까지 붙처서 사업을 인수하여

단독사장으로 신나게 사업을 질주할 수 있게되어서 자신만만하였고-

기세 등등하여 웬만한 사람들은 다, 눈아래로 깔보면서 목에 힘주고 잘나갔다.

 

흐러는 세월을 어느 힘센장군(將軍)이 그 힘으로 세월을 잡을수 있으랴!

이해도 어느듯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1968년 희망찬 새해의 날이 밝자,

올해는 이 기세로 전진하여 대박을 터터려 기존 나이트클럽을 하나 더,

인수하여 사업을 확장해 나가야지 오봉인 다짐도 세로히 하였다.

 

그런데 1968년 1월 21일 당시 이북괴뢰수령 "김일성"의 특별 지령을 받은

31명의 무장공비 특공대가 청와대의 박정희대통령살해목적으로

청와대기습사건이 발생하여 세상이 발칵뒤집혀졌는데~ ~ ~ 

 

당시 남파 습격공비 31명중 29명은 사살이 되고 1명은 생존하여

월북하였으며 1명은 체포되어 그 후 전향하고 서울침례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여 서울성락교회에서 목사가된 김신조(68세)씨가

당시의 습격공비중 한사람으로써 현제 남한에 생존하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간 조금 느슨해진 국내의 안보의식이 강화되고

사회분위기는 급랭해갈 지음 나이트클럽등, 유흥업계에 심각한

비상령이 떨어젔다.

 

어떤 유흥업소이던간에 밤 10시만되면 문을 닫으라는 당국의 지시가

떨어지니 각, 유흥업소중 특히 나이트클럽은 통행금지 예외의 특혜가 

사라진 지금 그간의 타업소와 차별화 된 것이 아무것도  없서서~ ~ ~ 

 

하루 아침에 손님들은 뚝 끊어저 영업은 파리만 날리는 신세가되고,

언제쯤 이 비상사태가 해제될지도 안개쏙이라,

오봉이가 나이트클럽 단독사장지위를 인수한지 채 한달 남짖~

 

인수할 그땐, 모던 좋았던 일들이 밤세 안녕하십니까?

이말을 실감하며 한숨을 땅이 꺼지도록 해본들 앞날이 아득하기만 하다.

-계속-

 

 

 

지혜의 말한마디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불행에서 행복으로 가꾸는 데는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