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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순이의 굴레

단해 2009. 10. 19. 20:44

 

너거사 마 (그저 너희들은) 다 부모 잘못 만난 죄로 이 고생을 다 시키니 우짜꼬?

 

순이는 엄마와 두 동생과 함께 아궁이에 불을 지피지 못하여 냉골(찬어름골)같은

방에서, 누더기 같은 이불 하나만을 덮고 넷식구가 서로의 몸열을 의지하고 팔을 서로 몸에 걸쳐서 웅크리고 자고저 하는데 배는 곺으고 방은 차가워 얼른 잠이 들지 못하고 숨들을 죽이고 있었다.

 어느새 두 동생은 팔이 스르르 방바닥으로 떨어지며 몸을 뒤적거리고 쌕쌕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보아 잠이 찾아 온것 같고,

 

순이는 엄마를 고히 불러본다. - 엄마 -  

음,- 얘는 힘들텐데 잠이나 잘것이지 -  왜?

나, 시집 안갈래!

그게 무슨 소린데, 나, 시집가고 나면 엄마 혼자서

두 동생을 다 대리고 어떻게 살건데 도저히 난, 못가겠어.

 

가시나 말도 않되는 소리 하지도 마레이

설마, 셋식구 입에 거미줄 처지겠나?!

이 집에서 니 하나의 입이라도 덜고(없어진다는 뜻)

니 하나라도 그 집에가서 밥 굶지 않고 잘살면 마, 된거 아이가 

딴 마음 묵지마래이~ 

너거사 마 (그저 너희들은) 다 부모 잘못 만난 죄로 이 고생을 다 시키니 우짜꼬?

부모로서 무슨 말 하랴!  할말 없데이 마 잠이나 자거라.

 

깊은 밤, 무섭게도 고요한 침묵과 적막이 흐르고 -

 어느세 억눌릴때로 다 눌린, 엄마의 긴장이 잠으로 빨려가는데

순이는 엄마가 나즉히 그 코고는 소리가 얼마나 애처롭고 따스한지!

 

   [가련한 꽃]

 

동짓달 긴긴밤

삭풍은 사정 없네

 

치마 끝에 매달린

바싹 말란 씨레기는

 

무슨 한이 그리 많아

밤새도록 통곡하나

 

내 귓전 뚜디리며

지나가는 네 절규는

 

어느 뫼 바윗 덩어리

녹여 내는 소리인가?

 

 가련한 꽃 한송이 잠못 이룸을

세상천지 뉘라서 아~ 알리 - !

(nk923bea@hanmail.net ) 작시

 

순이는 한겨울 추운밤 홀로 많은 번뇌를 가슴에 앉고 잠 못 이루는데 - -  -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