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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엄마라는 굴레

단해 2009. 10. 17. 21:44

 

순이는 맏딸이 아니었지만 언니의 죽음으로 원치 않는 맏딸로 집안의 기둥이었다

 

"강순이"는 "수갑"이 동네에서 약 오십여리 떨어진 촌 구석 중에서도 더 구석쪽인 빈촌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곳에서 살고 있으며 아벼지는 순이가 열두살

될때 병으로 돌아 가셨고 홀 어머니와 바로 밑 남동생과 막내 여동생, 넷 식구가 초가(지붕이 벼집으로 만든 집)에서 세끼 밥이라 카는 것을 먹기 보다는 못 먹는 나날이 더욱 많아, 비참을 지나 처절하게 살고 있었다.

 

우리 인생이 비참이나 처절하다라는 것을 글로나 말로서 읽고 듣고하여 이해하는 입장이 되면 [그것이 정말 어떤 상황인지를 체험하지 않고서는] 뼈저리게 실감할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상 그렇게 살라온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 ~   

 

위로 오빠 한분은 쪽바리(일본놈)들의 2차 세계대전의 소모품으로 징용(강제노동징발)에 끓여가 일본 어느 광산에서 노역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한번은 전해 들었으나 그 후는 소식이 단절되어 죽었는지 살아있는지 알길이 없었고 바로 위 언니는 타고난 신체도 약한 편이 었지만 늘, 못 먹고 잔병에 약이라 카는 것을 단, 한번도 입에 넣어 보지 못하고 꽃다운 열다섯 나이에 한 많은 세상, -  고통의 마지막

길로 그냥 가버렸고~

순이는 맏딸이 아니었지만 언니의 죽음으로 원치 않는 맏딸로 집안의 기둥이었다. 

 

순이와 그 홀 엄마 그리고 두동생만 남고 아버지와 언니는 되돌릴수 없는 길을  

가버렸고 오빠는 쪽빠리에게 뺐겨 순이네 가족한테는 현실적으로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은 있어나 마나 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두 동생은 너무 어리고 홀 엄마와 순이는 함께 딱치는 데로 입에 들어 갈 일거리

라면 무슨 일이라도 다 하고저 하였으나 동네가 빈촌이라 허드레 일감도 그의 없다 싶이 하고 혹 도움이라도 줄 변변한 일가 친척도 없는 신세라 앞길이 막막하였다.

 

이는 순이 집, 뿐만 아니라 일본놈들은  대동아전쟁에 국운을 다걸었고 우리는 나라 그 자체가 몽땅 왜놈에게 먹혀 나라 꼻은 대문도 주인도 없는 형편이 되어 오직 일본놈 만이 우리를 침략하고 짖 밟아서 스스로 상전(높은 주인님)이 되어 삼천리 강토가 다, 희망을 잃고 힘 없음에 한탄하고 신음하고 있을 때 이기도 하다.

 

순이는 방년 이팔청춘인 십육세의 꽃띠이었으나 이제 시집을 가야한다는 엄마와 매파의 말을 들을때 시집이 뭤인지는 알듯 모를듯 하고 왠지 앞날 앞길은 그저 불안하고 캄캄하여 보이 지지 않은데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살아온 길이 아득히 보이는 듯, 눈앞에 선 ~~ 이,  스크린 처름 나래를 펼치고 - - -  !!!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