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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갈등

단해 2010. 3. 29. 08:30

 

[갈등葛藤]

 

 상이군(경)이란 단어가 - !

"물론 민주회복도 좋고 그래야만 하지만 나라가 없으면

지킬 민주주의도 없는데"

 

 

윤오봉씨의 지혈한 다리는 이제 피가 엉고되어 더 피는 흐러지 않지만 송곳으로

콕콕찌르듯 총알이 관통한 그 자리는 쑤시고 아프며 온 몸에 한기를 느껴

오한이 나고 이빨이 덜덜 떨리며 사지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데 이안에선

총성이나 포화의 그 찢을 뜻한 금속성의 괭음이 이 배 밑창까지는 들리지 않으니 난, 피곤에 지처서 - - -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 처참한 주위 환경이지만 그래도 깜빢 졸은것 같은데 -

 

어딘가 모르지만 배어 기관소리가 멈춘걸보아 어느 항구에 도착을 한모양이고

이 배 밑 창에서는 밖같 세상이 낮인지 밤인지가 도저히 구분이되지 않는 어둑

컴컴한 백열등불 밑이라 알수가 없엇고,

 

사람들이 가마니로 만든 임시 들것을 가지고와 날 그위에 눞혀서 대리고

나가는데 바같 세상은 확 열기가 얼굴에 닫는 무척 더운 한 여름의 때약 빛이

너무나 찬란하게 빛나 눈을 못 떠게 하는데,

 

그 태양빛을 보는 순간 내가 살아서 저 찬란한 빛을 다시 보다니 눈에 눈물이 -

저절로 쏟아 지는고 평소엔 매일 보는 태양에 대해 전연 별 감각이 없었으나

죽음의 세계와 산, - 세상을 들락거린것이 얼마 아니거늘 죽음의 세계에서

산 세걔로 와보니 세상이 세로워 진것 처름 달라저 보여 감격서러웠다.  

 

태양의 불빛을 보는 순간 그 아름다움과 생명의 신선함을 느껴보고 한 여름의

상쾌하게 흔들거리는 바람의 향기는 김일성 그 개 자슥 때문에 죽음의 고통에서

살아 나옴으로서 생동감 있는 자연의 신비로움을 세로히 알게 되었는데- 

 

도착하여 입원한 병원은 육군제5 육군 병원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과거 부산시청

옆에 있던 왜정시대에 미나까이라고 하는 7층의 백화점 건물이었고 지금은

아마 롯데의 100층짜리 건물 짖고 있는데 그때 그땅과 건물은 흡수되어 없서진것으로 알고 있으며

 

대포의 파편과 총알 및 화기 등등으로 인한

배 밑창의 전사자나 부상병들은 파편과 총알, 화기가 다달은 신체부위에 따라

그 처참한 꼻은 말로서 다 표현할수가 없고 치료 받다가 죽어간 사람도 아주

많으며 살아서 남는다 하드라도 다 병신들이 되니 그때부터 이나라엔 처음으로 

상이군인(경)이란 단어가 생겨 나기도 하였다.

 

내가 입원한 병원의 내주변을 살펴보니 이, 전상자들에 비해 나의 부상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일어나 걸을수 없었기 때문에 똥 오줌을 혼자서 해결할수가 없서서

당시 자원봉사하는 대한민국부인회 적십자회 등등의 봉사하는 부녀자들이- 

 

그의 엄마나 할머니급들 쯤 대는 분들인데 이 곤란한 문제를 스스럼 없시 알아서

우리에게 별, 수치감을 느끼지 않게 잘 도와주어서 오줌 누기위해 조(ㅈ)대가리를

그 집어내고 똥을 누고 난 다음 뒷 딱기를 해주셨는데 처음은 어색하고

부끄러웠으나 차츰 익숙하게 되었고 이 자원봉사자들께서 잘 도와주어 무사히

3개월여간 치료를 받고 그의 완치함에 따라,

 

당시의 3사단 헌병대에서 와, 내 신병을 인수 받아 헌병대로 대리고 가서는

학도병의 부대는 전사자가 많아 이미 없어젓고 따로히 복귀해야할 부대도

없었음으로 제5육군병원에서 치료받고 퇴원(귀가조치)하였다는 증명서 달랑

한장 받아 귀가해도 좋다하여 집으로 돌아 온것이 나의 6, 25로인한 참전군대

생활의 전부인데-

 

학도병이라 군번도 없엇고 군에 복무했다는 기록이나 아무런 증명서 한장을

당시엔 하도 나라가 패망직전으로 정신 못차릴 만큼 어수선하여 어디에

가, 받을 수 있는지 알곳도 없었고 받을  (발행해주는) 곳도 없었다.     

 

전쟁이 스처 지나간지  60여년의 세월이 흘러 갓건만 지금 당시 전사자들은

이미 다 죽고 없으니 그렇타고 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참전하여 현재까지

얼마 살아 있지 않은 상이 군경에 대해서 그들에 대한 예우와 국가보훈복지가

너무나 소흘히 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에게는 현재까지 껌값도 되지 않은 미미한 예우를 국가가 하고 있음으로

대부분의 그들의 삶은 최하의 생활수준에 못 밑치고 전쟁으로 인해 나라를

지키다가 병신이되어서 생활능력을 다 잃어버리고 원치 않았던 인간이하의

생활과 사람대접을 못 받고 병신대접으로 늙어가 겨우겨우 연명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가 책임을 저야만 하는가?

국민대다수는 이들을 지금은 까마득히 잊어버렷고 이들 덕분으로 현재 멀쩡한

사람들은 누구 덕에 병신되지 않앗고 편히 사는데 이 불공평을 어찌해야 할찌,

 

"물론 민주회복도 좋고 그래야만 하지만 나라가 없으면 지킬 민주주의도 없는데"

광주민주회복의 사망자나 부상자와 이들 상이 군경을 대비해 현재의 예우를

비교해 본다면 형평의 차이가 나도 너무 너무 나는 것 같다.

 

광주민주회복투쟁에서 사망자나 부상자들은 다 수억원의 보상금을 받고

훈장이나 포상을 받으며 열사니 의사니 하여 후한 예우와 보훈대우를 해주며

특별히 마련한 국립묘지수준의 묘지에까지 안장하고 그들을 위해

국가기념일까지 정하여 추모하기까지도 하는데~ ~ ~ ?!

 

공산도당들이 대한민국의 나라 자체와 우리국민을 말살하면서 그들이 만일 그때 

승리하였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어디에 있고 나라나 국민은 지금 어찌되어

있을지는 불을 보듯 빤한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또한 오늘날의  광주민주화운동이 어디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날수  있엇겠는가?

 

일부 손톱밑의 까씨는 그렇게 크게 받들고 심장자체가 짤려 모든 생명이 끝장나는것을 끝까지 목숨과 팔 다리 눈 할것 없시 국가와 국민에게 다 받친 전몰 군경사망자와 부상자(불구자)인 상이군경에 대해서는 국가나 국민들이 그들에게 지금까지 해준것이 무엇인가 ~ ~ ~ ?!

어떤 대답이라도 좋으니 쏙시원하게 말좀해보시요,

 

그들에게 현재 잘 예우해주야 빛좋은 개살구로 국가유공자라 칭해주며

월 약 8만여원정도 대우해주는것 뿐, - 

이것도 근래에 와서 선심쓰듯 시행해 주고 있는데 목숨 값과 눈 팔다리 기타

신체부위를 국가에 바친것에 비해 아니 할 말로 신체부위의 값을 치드라도

너무나 미미한 돈의 지급이고 광주와 비교한다면 형평성이 터무니 없시 불공평

한것 아닌가?

그들은 불구의 병신들이라 생활능력도 병신될때부터 상실되어 있는데 - - - !!!

 

그들의 회생에 대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얼마나 가지고 어떤 예우를

우리는 지금하고 있는가?

돌이켜서 모든 상황을 한번 점검해 보아서 시정할때가 아닌가 한다.

앞 뒤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어 이들을 민주화 운동과 대비할때 예우에 있어서는

뭔가가 잘못되어도 아주 잘 못되어 있는것 같은데- - - ! 

 

이 불공정을 알며 인식하고 있는 정치 지도자란 자들과 이러한 의식이 있는

국민들이 이 나라안에 얼마나 되는 지를 알 수가 없으나,~ ~ ~ 

 

우리 모두가 다, 지금까지 응분의 예우를 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늘, 미안하고 감사함을 잊지말아야 하고 그들을 언제나 기억하는 것이

참 애국적 마음이고 정신이 아닐까?

 

만일 앞으로 전쟁이 또 난다면 참전한 사람들께 전쟁이후 이런 인간이하의

쓰레기 같은 대우를 받게 한다면 누가 또 전쟁에 나가서 죽기로 싸우며

팔 다리 눈 할것 없시 국가나 국민을 위해서 다, 바치고저 하겠는가?

 

우리 국가나 국민 모두는 잘, 못된것은 항상 바로 잡을 용기가 있어야하고

진정 나라를 위해 회생된 애국지사나 전몰 상이군경들의 회생적 삶에 따라

사라저간 숭고한 정신을 기리 기리고 그 고마움을 잊지마라야 할터인데,

 

이 나라를 위해 그들은 희생되고 병신되어 본의아니게 걸인 생활의 삶을

살아가면서 종은 누굴 위해 과연 울었는가~ ~ ~ ~ ~ ~ ?!

 

- 계속 - 

 

오늘의 속담 한마디

가난 구제는 나라도 어렵다.